
자동차를 구매하는 경우, 제조사는 일정 기간 무상 수리를 제공한다. 물론, 무상 수리로는 해결할 수 없는 중대한 하자가 발견되어 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있지만, 극히 예외적이다. 문제는 무상 수리 기간이 끝난 중고차 매매의 경우다. 일부는 연장 보증을 별도로 구매하기도 하지만, 구매자가 온전히 부담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비슷한 상황은 기업을 사고파는 M&A 시장에서도 발생한다. 거래 규모가 크기 때문에 매수자들은 통상 다양한 자문사를 동원해 다방면의 실사를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발견된 리스크는 가격에 반영한다. 실현되지 않은 잠재 리스크에 대해서는 해당 사안 발생 시 매수인을 면책해주는 조항을 계약서에 명기한다.

문제는 실사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은 리스크가 거래 종결 이후 현실화되는 경우다. 이에 대비해 계약서에 ‘진술과 보장’ 조항이 들어간다. 이 조항에 따라 매도인은 대상 기업에 문제가 없음을 진술하고, 그 진술이 사실임을 보장해야 한다. 이 조항을 위반할 경우에 매수인이 입은 손해를 매도인이 배상하는 ‘면책’ 방식도 함께 규정한다.
최근 국내 M&A 거래에서는 ‘진술과 보장’ 위반을 둘러싼 분쟁이 증가하고 있다. 전기변환장치 제조업체 디피씨의 경우, M&A 거래 종결 후 공장에서 발생한 환경 문제로 과징금이 부과되면서 거래 당사자 간 소송이 진행 중이다. 환경폐기물 처리업체 에코비트는 거래 종결 후 침출수 검출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당사자 간 분쟁이 시작되었다.
조항이 있음에도 분쟁이 잦은 이유는 같은 사안을 매도인과 매수인이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이다. 이 틈새를 겨냥해 등장한 상품이 바로 ‘W&I(진술과 보장에 대한 면책) 보험’이다. 거래 당사자들이 합의한 진술과 보장에 위반이 발생하여 매수인이 손해를 입을 경우 보험사가 이를 보상한다.
W&I 보험은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본격 도입된 이후 전 세계 M&A 시장으로 빠르게 확산했다. 시장 규모는 2013년 약 10억 달러(1조4000억원)에서 2023년 약 50억 달러(7조원) 이상으로 10년 사이 5배 성장했다. 특히 투자자들에게 매각 수익을 신속히 분배해야 하는 사모펀드들이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2023년에만 전 세계 약 2000여 건의 거래에서 이 보험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이유에서 국내 M&A 시장에서도 W&I 보험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국내외 손해보험사뿐 아니라 전문 보험대리점들도 활발히 영업을 확대 중이다. 전체 보상 한도의 1~2% 수준에 불과한 보험료로 대규모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워낙 명확하기 때문에 W&I 보험이 더욱 고도화하고 주목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철민 VIG파트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