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 장관' 정동영의 아집...설득력 없는 탈북민 개칭 멈춰야

2025-09-18

정체불명 '북향민'으로 바꾸려 시도

20년 전에도 '이향민' 내세웠다 혼선

"평양행 티켓 따내려 변경" 비판도

용어 집착보다 정착·차별 개선 필요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취임 직후부터 밀어 부쳐온 탈북민 개칭 시도가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수 십년 간 사용돼오면서 북한 세습독재 체제를 벗어나 자유 대한민국에 안긴 3만4000명 주민의 정체성을 대변해온 용어를 무리하게 바꾸려다 비판여론에 직면한 것이다.

정 장관이 내세우는 대체용어는 '북향민'(北鄕民)이다.

하지만 탈북민을 대표해 지칭하고 그 함의를 담는 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탈북민 사회는 물론 대북관련 단체와 전문가 속에서 쏟아지고 있다.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다'는 정도의 의미를 담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뭔가 알맹이를 빼버린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는 취지에서다.

일각에서는 탈북민이란 말에 거부감을 드러내온 북한의 입맛에 맞추려는 시도라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대북문제에 오랜 경륜을 갖춘 이동복‧김석우‧염돈재 등 자유대한원로회의 소속 인사들이 어제 "정동영의 망언은 북한 독재체제와 타협하기 위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희생시키자는 것"이란 비판 성명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들끓는 반발 여론에도 통일부 측은 연구용역 과제를 강행하고 있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연말까지 새로운 용어를 선정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통일부 안팎에서는 '사실상 북향민으로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란 말이 나온다. 용역과제 등은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란 얘기다.

구병삼 대변인도 그제 언론 브리핑에서 '정 장관의 의지가 크게 반영된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시인하며 "탈북민 용어를 북향민으로 바꾸자는 것"이라고 확인했다.

걱정되는 건 이번 사태가 20여 년 전과 판박이란 대목이다.

정 장관은 첫 장관 재임 시절인 2004년 8월 초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인만큼 탈북자를 '이향민'(離鄕民)으로 바꿔 부르는 게 좋을 것"이라면서 간부에게 명칭 변경추진을 지시했다.

통일부는 인터넷 공청회 등을 거쳐 5개 예비후보를 골랐는데 1등을 한 용어는 29.4%를 득표한 '자유민'이었다.

하지만 통일부는 9.7%를 얻는데 그쳐 4등을 한 이향민을 선정했다.

대권후보로까지 거론되며 실세로 여겨졌던 정 장관의 뜻대로 정책을 꿰맞춘 것이다.

당시에도 정 장관의 이런 행태를 두고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탈북민' 표현에 물타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정 장관의 개칭 지시 한 달 전인 2004년 7월 베트남에 머물던 탈북민 468명이 우리 민항전세기 2대에 나눠 타고 입국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북한 당국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남북관계가 꼬일 위기 상황이 벌어졌다는 점에서다.

정 장관이 이듬해 6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해 당시 국방위원장 김정일과 만나면서 탈북민 사회에서는 '평양행 티켓을 얻기 위해 우리를 농락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통일부가 탈북민 용어 변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내세우는 논리도 군색하기 그지없다.

'북한이탈주민이란 말에서 '이탈'이란 용어가 주는 부정적 어감 때문'이란 게 당국자의 브리핑 내용인데, 이는 탈북민이란 말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봐야한다.

정부는 1997년 탈북민 정착지원 관련 법률을 만들면서 '북한이탈주민'이란 용어를 고집해 결국 법적 용어로 굳어졌다.

하지만 탈북민은 물론 국민들로부터도 외면 받았고 이제는 법률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한 용어가 됐다.

그런데 느닷없이 '북한이탈주민'을 들고 나와 일상용어로 굳어진 '탈북민' 개칭에 나서겠다고 하니 어리둥절하다.

지금 통일부는 북한의 대남적대 정책과 핵‧미사일 도발 고도화 등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당국 대화 재개와 교류‧협력의 물꼬를 트는 전략마련이 긴요한 상황이다.

통일부 내부 사정도 엉망이다. 직제 개편과 조정이 제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20명 안팎의 과장급 인원이 '무보직 대기상태'로 한 방에 출근해 무위도식하면서 국민 혈세를 축내는 '월급 루팡' 신세가 된 지 일 년 가깝다.

취업과 건강문제 등 한국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들은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고, 여전히 차별의 서러움을 호소한다.

그런데 장관과 부처 간부들이 때 아닌 탈북민 용어 변경 시도에 매몰돼 분란만 일으키고 통일정책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는 형국이다.

정 장관이 20년 만에 다시 같은 자리에 않는 재수(再修)장관을 택했다면 뭔가 다른 모습,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나름대로의 뜻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아무런 창의성 없이 흘러간 물에 물레방아를 돌리려 하고, 낡은 레코드처럼 '탈북민 개칭'이란 허수룩한 일에 집착한다면 실망스럽다.

장관 한 사람의 아집과 일부 고위 간부들의 '실세장관 추앙' 행태로 탈북민과 관련 정책의 근간이 갈팡질팡한다면 어떻게 '국민 주권정부'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국방부와 군 내부에서도 부당한 상관의 지시는 거부하는 문화가 굳어지는 판국에 통일부 공직자들이 최근 보여주는 복지부동도 안쓰럽다.

정 장관과 통일부 간부들은 "탈북민 용어의 전환이 곧 역사적 진실의 삭제이며 북한의 선전논리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는 길"이란 원로들의 말에 귀 기울여 개칭 놀음을 즉각 거둬들여야 한다.

yjlee@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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