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가 말하는 자랑스러운 역사, 친일과 독재”

2025-04-30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해방 80주년’ 기획

② 민주공화제의 탄생, 1919년? 1948년?

민주공화제, 1919년 시작돼

1948년 공포 제헌헌법 명시

1990년대 ‘건국절 주장’ 등장

‘임시정부 부정’이 핵심 논리

김문수는 ‘일본 선조’ 발언도

이인 초대 법무, 국적법 관련

“8·15 이전에 국가가 있었다”

대한민국, 남이 준 게 아니라

우리 민족 힘으로 이뤄낸 것

“민주공화제가 언제부터 시작됐느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919년에 시작됐고, 지금은 106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연구자로서 또 역사운동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친일 독재 역사를 비판하면 일부에선 자랑스러운 역사를 얘기해야지 왜 우리 역사를 자꾸 그렇게 비판적으로만 보느냐, 자학사관에 빠졌다고 지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자랑스러운 역사는 친일과 독재입니다. 정작 우리가 자랑스러워할 역사는 독립운동의 역사, 민주화운동의 역사, 동시에 통일운동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그 자랑스러운 역사 얘기를 오늘 하면서 이를 지우려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려고 합니다.”

‘2025 현재사’ 시리즈 시민강좌의 두 번째 시간 제목은 ‘민주공화제의 탄생, 1919년? 1948년?’.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기도 한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24일 강연에서 독립운동에서 싹튼 자랑스러운 민주공화제의 시작과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대한민국 1948년 건국설’의 허구성을 사료와 헌법에 비추어 조목조목 짚었다.

민주공화제 기원은 독립운동

“1919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하면서 임시헌장 제1조에 민주공화제라는 단어가 들어갔습니다. 유럽 최초의 민주공화국 헌법은 1920년의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라고 얘기하는데, 우리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이 이들 나라보다 1년 더 빨리 민주공화제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 전 관장은 3·1운동 이전에 이미 민주공화제를 지향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1917년 대동단결 선언이 대표적인 문서라고 설명했다. 1910년 대한제국의 주권을 황제가 일본에 넘겼을 때 주권은 황제에게서 민으로 넘어왔다고 선언한다. 당시 젊은 선각자들이 갖고 있던 민주주의와 공화제에 대한 꿈이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임시정부로 이어졌다고 했다. 이 전 관장은 “많은 역사학자는 1919년이 우리 역사에서 민주주의, 민주공화제라는 그야말로 새로운 길로 접어들게 된, 가장 큰 분수령을 이룬 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1919년 4월11일 공포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대한민국은 망한 대한제국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새로 만들 나라 이름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제국은 망했지만 우리가 민국을 새로 세워서 나라를 흥하게 하자”는 반론이 받아들여지며 대한민국이라는 국호가 채택됐다고 했다.

1948년 7월17일 공포된 제헌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로 시작한다. 대한민국 민주공화제의 역사가 1919년에 시작됐다는 것이 더욱 명확해진다.

역사 부정 세력의 도발, 1948년 건국설

“한국의 역사 부정 세력을 상징하는 단어가 바로 뉴라이트라는 네 글자입니다. 한국 뉴라이트의 특징은 민족을 부정한다는 것인데,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는 발언까지 나온 윤석열 정권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전 관장에 따르면, 소위 ‘건국(절)’ 주장은 199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1994년 7월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사이 남북정상회담 추진으로 반공 우익의 위기의식이 고조됐고, 참여정부가 출범하며 친일파 청산 움직임이 일자 보수 쪽에선 자신들의 뿌리가 완전히 뽑혀나간다는 위기감에 ‘뉴라이트’ 논의를 수입해 논리를 만들면서 본격적인 방어태세를 갖추기 시작한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은 취임사부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라며 광복절을 ‘건국절’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노골화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3·1절이나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거침없는 뉴라이트 인식을 드러냈고, 뉴라이트 인사들을 공직 곳곳에 중용하며 건국절 논리를 적극적으로 확산시켰다.

건국절 주장의 핵심은 한마디로 “임시정부 부정”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뉴라이트가 집필한 <건국 60년>(홍보책자)에 이들의 의도가 잘 나와 있다. “임시정부는 자국의 영토를 확정하고 국민을 확보한 가운데 국제적 승인을 바탕을 둔 독립국가를 대표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의 실제 출발은 1948년 8월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보아야 한다. … 대한민국을 건국한 공로는 1948년 8월 정부 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의 공으로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실상 모태는 미군정기(1945-48)”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독립운동가 덕분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출범한 게 아니라, 이들이 일컫는 ‘건국운동가’들이 주인공이었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설’은 친일파와 독재자를 애국자로, 독립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를 반국가사범으로 뒤집기 위한 일종의 역사 쿠데타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옛 한나라당, 새누리당)이 여러 차례 기존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을 대신하자고 입법발의한 ‘건국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에는 서북청년단 등 극우단체 회원들까지 ‘건국유공자’ 대상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뉴라이트 세력이 건국의 아버지로 떠받드는 이승만 자신이, 여러 문서에서 1948년 건국은 없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제헌국회 개원식 개원사(대한민국 30년 5월30일 국회의장 이승만), 초대 정부 대통령 취임사(대한민국 30년 7월24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대한민국정부수립국민축하식의 대통령기념사(대한민국 30년 8월15일 대통령 이승만) 등이다.

‘건국절’과 일본 국적 논란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는 과거 고용노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일제강점기에는 나라가 없었으며 우리 선조의 국적은 일본이었다고 강변했다. 이 입장을 굽히지 않다가 최근 후보 토론에서 “나라를 빼앗겨 무국적 상태였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은 임명 이후 “우리 백성들은 원치 않지만 법적으로는 일본 국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전 관장은 이에 대해 ‘나라가 없었다’ ‘일본 국적을 가진 일본 국민이었다’ 등의 주장에는 사실상 일제 식민 지배는 합법이었으며 대한민국은 1948년 8월15일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이른바 ‘건국절’론이 깔려 있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식민 지배가 합법이라면 이를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은 불법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전 관장은 이어 일제는 1899년부터 시행된 일본 국적법을 조선에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본 호적과 조선 호적을 구분하고 일본 호적에 오른 일본인에게만 국적법을 적용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일본 국적 운운은 대한국민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현행 헌법 또한 부정하는 것이다.

1948년 12월20일 제정된 대한민국 국적법 제2조는 ‘1. 출생한 당시에 부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 2. 출생하기 전에 부가 사망한 때에는 사망한 당시에 대한민국의 국민이던 자’를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한다. 이인 초대 법무부 장관은 1948년 12월1일 본회의에서 정부입법인 국적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헌법 전문을 보더라도 3·1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우리가 결국 8월15일 이전에 국가가 없었느냐 하면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부가 없을망정 국가는 여전히 있읍니다. … 그런 까닭에 이 법률상의 대한민국 국민은 오래전부터 정신적으로 법률적으로 국적을 가졌다고 봐서 이 법률을 제정했습니다”라고 발언했다. 김문수 후보의 발언에 따르면 아버지가 일본 국민이었던 김 후보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질 수도, 대한민국의 공직을 맡을 수도 없다.

이 전 관장은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남(일제나 미국)이 선물한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힘(독립운동)으로 이룬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며 강의를 마쳤다.

후원 : 서울시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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