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이라는 잠꼬대

2025-06-01

요즘 한국 신혼부부의 필수템인 로봇청소기는 국내 업체 제품이 아니다. 중국 로보락이다. 가성비가 선전의 이유라고 생각한다면, 그 짐작은 틀렸다. 로보락 제품은 국내외 로봇청소기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가격에도 불구하고 성능 때문에 1위를 차지한단 게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가성비의 중국’이 아니라 ‘기술의 중국’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주 로보락은 세계 최초로 5축 로봇 팔을 탑재한 프리미엄 로봇청소기를 국내에 출시했다.

중국 굴기 뉴스는 지겨울 정도지만, 올해 변곡점이 될 만한 세 가지 사건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먼저 딥시크의 출현이다. 미·중 패권 경쟁 승부가 인공지능(AI) 분야에서 판가름 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중국의 거센 추격 속에서도 AI 분야에서만큼은 미국이 앞서가고 있다는 인식을, 딥시크가 송두리째 무너뜨렸다.

두 번째 인도·파키스탄 전쟁에서 파키스탄의 중국제 전투기 J-10C가 인도의 프랑스제 라팔을 무더기로 격추한 사건이다. J-10C는 중국의 최신예 전투기도 아니다. 무기 기술에서는 미국 등 서방이 중국보다 우위라는 믿음에 금이 갔다. 중국이 압도적인 군함 제조력을 바탕으로 해군력에서는 미국을 곧 추월할 것이란 관측이 기정사실화돼 있다.

세 번째, 관세전쟁에서 미국의 패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중국에 145% 관세를 부과했지만 중국은 반응하지 않았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처럼 중국이 굽힐 것을 기대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초조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린 상황을 전 세계가 목도했다. 무역 분야에서도 미국이 ‘갑’인 시대가 종료했음을 상징한다. 미국의 항복으로 두 나라가 90일간 관세전쟁을 휴전하는 데 합의했다.

최근 중국 정부가 ‘중국제조 2035’ 계획을 수립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15년 수립한 ‘중국제조 2025’로 중국은 전기차, 2차전지, 태양광, 5G통신, 드론, 신소재 등 주요 제조업 분야에서 전 세계 1위 기업을 탄생시켰다. 중국제조 2035 계획의 초점은 반도체다. 유일하게 중국이 석권하지 못한 분야인 반도체에서도 1위로 올라서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산업의 쌀’ 반도체 제조 분야도 장악하는 순간, 국제 질서는 지금과는 매우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어느 때부터 한국 사회에는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거나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중국에 대해 사실을 말하는 것과 독재인 중국 체제를 지지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하지만 사실을 말해도 ‘친중’이란 딱지를 붙이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현실을 직시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말하면 “중국에서 돈 받았냐”는 반응이 상당수다.

특히 지식인과 정치인의 ‘중국맹’은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 발전은 과장’ ‘붕괴 위기’라는 취지의 자칭 중국 전문가들 영상이 유튜브에 즐비하다. 이런 혐중 정서에 편승하기 위해 대선 TV토론회에서도 상대 후보를 친중으로 몰아가려는 보수 후보들의 집요한 공세가 있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 측은 탄핵심판에서 불법계엄 배경으로 중국의 선거 개입이라는 황당한 음모론을 펼쳤다.

데자뷔다. 지난 20년간 한국이 부상할 때 일본에서 일어난 현상이 겹쳐 보인다. 이미 여러 제조업 분야에서 한국에 추월당하고 있었지만 ‘한국 데이터는 조작이다’ ‘한국 정부의 언론플레이다’라는 식의 기류가 일본 사회에 넘쳐났다. 한국 발전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었던 인지부조화는 일본 몰락의 한 배경으로 꼽을 만하다.

차기 정부는 대중국 정책 기조를 정해야 한다. 한국의 처지는 한·미·일이 더욱 단결해 중국 발전을 현 단계에서 저지해야 한다는 쪽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취해야 한다는 쪽의 중간 정도에서 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 문제는 외교 관계, 안보 전략, 무역균형 차원을 넘어선다. 생존의 문제다. 중국이 계획대로 반도체 등 모든 제조업을 석권하는 순간 제조업 경쟁국인 한국은 먹고살 길이 없어진다. 차기 정부는 대한민국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하고, 그 전제는 중국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색안경을 쓰거나 흐린 눈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이들이 창조해낸 ‘친중’ ‘반중’의 바다에 허우적거릴 새가 없다. 진짜로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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