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치’는 곤충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면서 자신의 분비물을 실처럼 감아 만든 껍질이다. 누구나 고치를 깨고 나비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나비가 되면 고치는 버려진다. 작가는 나비가 아닌 버려진 고치에 주목한다. 버려진 것, ‘찌꺼기’다.
“이번 전시는 실이나 끈을 무수히 반복해 대상의 표면을 덮는 코일링 방식으로 작업했습니다. 작품은 나비가 되기까지 한때는 집이었고, 가둠이기도 했던 고치를 연상케 합니다. 세상은 나비에만 주목하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흔적을 돌아보는 태도, 더 작고 여린 것을 끌어안을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갤러리숨이 ‘I See you’ 기획전 일환으로 청년작가 정강(28) 초대전 ‘그렇게 당신이 나비가 되었다면’을 27일까지 진행한다. 그렇게 당신이 나비가 되었다면, 나비라는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나비가 되기까지의 과정도 잊지 말라는 메시지다.

고치는 부여되었던 가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한 후 남은 찌꺼기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더미, 산업폐기물, 재개발구역, 예술이 머물다 간 하얀 벽면까지도 찌꺼기라 기술하며, 개발이 만연한 우리 삶터에서 연약해진 것을 돌아보는 태도를 제안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버려진 수많은 옷걸이들을 수십 수백 번의 행위를 통해 코일링 방식으로 감싸 안은 뒤 형태를 잡아 세워놓은 설치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옷걸이로 상징되는 누군가의 삶을 보듬어 안는, 작업에 임하는 진지한 자세까지도 엿볼 수 있는 다분히 노동집약적이고 사색적인 작품이다.
정강 작가는 “찌꺼기는 우리가 타자와 관계하는 모든 순간 반복되고 연속된다”며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주요한 요소가 바로 찌꺼기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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