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작품은 양탄자처럼 전시장 바닥에 깔려 있고, 또 어떤 작품은 전시장 벽에 커튼처럼 천만 걸려 있다. 심지어 벽에 걸린 천이 너무 길어 바닥까지 늘어진 것도 있다. 캔버스 뼈대만 벽에 기대 놓은 것은 어떤가.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작품’의 모습은 별로 없다. 작품인지 재료인지, 아니면 회화인지 설치 작품인지 아리송한 형태의 사물들 뿐이다.
1960~70년대 프랑스 미술 실험 운동을 조망하는 전시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Surfaces)’가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에서 8월 13일까지 열린다. 그동안 국내에선 일부 작가의 개인전이나 미술관 전시에서 ‘쉬포르 쉬르파스’의 일부 작품이 소개된 바 있으나, 이 운동을 주도한 예술가 13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쉬포르 쉬르파스’는 ‘지지체(Supports·쉬포르)’라는 뜻과 ‘표면(Surfaces·쉬르파스)’이란 뜻을 결합한 말로, 회화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캔버스 틀과 천)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은 예술가들의 도전을 의미한다. 회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다시 출발한 이 실험에 참여한 이들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직조, 염색, 매듭, 접기 등의 수공예 기법으로 작품을 완성하며 회화의 개념을 확장하는 데 앞장섰다. 또 미술 작품이 반드시 미술관에서 전시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맞서 천이나 매듭 등 작품을 ‘날 것’ 그대로 야외나 광장, 실내에 자유롭게 거는 쪽을 택했다.
이번 전시에선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벽’이란 작품부터 당시 예술가들의 이런 뜻을 잘 보여준다. 1973년 루이 칸이 제작한 이 작품은 바닥에 겹쳐 깔아 놓은 두 장의 노란 색 캔버스 천이 전부다. 노란 색 천 위에 프레임 형태로 재단된 또 한 장의 천이 덮여 있다. 회화와 액자, 벽과 바닥의 개념을 흩어 놓은 ‘예술’에 대한 기존 관념에 도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전해진다.
평소 작품이 걸리지 않던 미술관 로비의 높은 벽에 자리한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설치 작품 같기도 하고, 벽화처럼 보이는 노엘 돌라의 1979년 작 ‘타리아탄(Tariatan)’도 그 중 하나다. 전통적인 미술 재료를 벗어나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것으로 창작을 시도한 예술가들의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정신을 압축해 보여준다. 벽에 기대어 놓은 캔버스 틀은 다니엘 드죄즈의 ‘스트레처’(1968)다.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뒤에서 받치고 있는 나무 틀, 그리고 이것 너머의 하얀 벽까지 회화의 일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50년 전 이들은 왜 이런 작업을 한 걸까. ‘쉬포르 쉬르파스’는 1968년 소르본 대학 점거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퍼진 학생운동과 노동 파업 등 당시 프랑스 사회를 휩쓴 혼란과 저항의 분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었다. 김정 인당미술관 관장은 “쉬포르 쉬르파스는 단순한 실험 운동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관습에 저항해 새로운 예술 언어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며 “예술이 시대와 함께 어떻게 호흡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일요일 휴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