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수민씨(21)는 기록적인 폭염이 닥친 지난 주말 외출하기 전 휴대폰을 켜 날씨를 검색했다. 40도에 육박한 숫자가 화면에 떠올랐다. SNS엔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들의 소식이 줄이어 올라왔다. 불안하고 무력한 기분이 임씨를 덮쳤다. ‘이 거대한 구조를 내가 바꿀 수 있을까.’ 임씨는 바깥으로 향하는 문을 열기 두려워졌다.
극단 폭염·폭우를 오가는 날씨에 시민들이 우울감·불안감 등을 호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울감이 정신건강의 문제로 번지지 않도록 사회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우울·기후 불안은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위기 상황에서 개인이 보이는 심리적 증상을 말한다.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2014년부터 폭염이나 혹한 등 예측할 수 없는 기상상황으로 우울감·죄책감·불안·분노·좌절·억울함 등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증상을 ‘기후고통(Distress·정신적 괴로움)’이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비보를 접할 때 우울감 등을 느낀다고 말했다. A씨(30)는 “폭염이나 폭우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저 역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오래 함께하지 못하고 주어진 수명을 다 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며 “불안감에 심장이 답답해지고 잠이 안 오기도 한다”고 말했다. 민서진씨(23)는 “폭염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폭우에 미리 대피하지 못한 노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특히 무력하다”며 “언젠가 이런 위협이 나를 향할 거라는 생각에 공포감도 느껴진다”고 말했다.

기후 고통이 환경친화적 선택을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한국인의 기후불안 수준 및 특성’ 논문을 보면 기후불안 등은 실제 환경친화적 행동을 유도하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다. 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는 “우울감은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며 “기후 우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렌다(가명·27)는 “나 혼자선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없을 것 같다는 무기력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기후현실을 느끼는 만큼 할 수 있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환경을 위해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선택들이 모이면 달라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임씨는 “우울할수록 육식도 줄여보고 배달도 시키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며 “이렇게 마주해야 우울해도 무기력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정책연구실 부실장은 “다행스럽게도 기후불안을 겪는 청년 등은 괴로움에 빠진 채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찾는 등 노력하고 있다”며 “다만 앞으로 기후위기가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신 건강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정부가 시민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불안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기후 정책 등을 공유하는 등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