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1건도 안돼" 국감 앞, 공사 올스톱…이주노동자 되레 유탄

2025-09-14

건설 현장 사망 사고에 대해 정부가 고강도 제재를 예고하면서 공사를 잠정 중단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 특히 건설업계에선 10월 국회 국정감사를 앞두고 더욱 몸을 사리는 분위기도 읽힌다. 현장에서는 “공사 중단에 따라 가장 하층 노동자인 이주 노동자부터 일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건설은 지난 10일부터 “전국 105곳의 현장 작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김보현 사장)고 발표했다. 경기도 시흥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하청업체 노동자가 구조물에 맞아 숨지는 사고(9일)와 울산 북항 LNG 터미널 현장에서 온열 질환으로 의심되는 협력업체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고(4일)가 연이어 발생한 것의 후속 조치다. 롯데건설도 지난 6일 경남 김해의 한 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근로자가 굴착기에 치여 사망하자 전국 현장의 특별안전점검을 실시 중이다.

사망사고가 발생하지 않은 기업들도 “현장에서 약간의 위험성이 보이면 공사를 며칠간 중단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현대건설 관계자)고 한다. 다른 건설업체 관계자도 “(공사 중단) 손해가 몇십억 규모여도 이를 감수하는 분위기”라며 “새로운 계약이나 착공도 꺼린다”고 전했다. 실제 강남구 개포 우성 4차 등 서울 주요 정비사업 조합들의 공사계약이 미뤄지고 있는데, 사업 참여가 예상됐던 건설 기업들이 시공사 경쟁 입찰에 들어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건설업계 초긴장 분위기엔 국회 국정감사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여파도 한 몫하고 있다고 한다. 시공 순위 10위 안에 드는 한 건설회사의 관계자는 “다음 달까지는 사고가 단 1건도 없어야 한다는 암묵적 지침이 내려왔다”며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 회사 대표들이 불려 나가지 않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실제 국회 국토교통·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관계자들은 최근 사고와 관련된 업체 대표들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포스코이앤씨 건설 현장 사망사고를 두고 ‘고의적 살인’으로 규정하고 면허 취소를 포함한 강도 높은 제재를 예고했다.

“공사 중단 가장 큰 피해자는 이주노동자들”

문제는 건설업계가 몸을 움츠리는 탓에 현장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달 4일 광명~서울 고속도로 공사 현장에서 LT 삼보 소속 미얀마인 30대 근로자 1명이 감전 사고로 다친 이후, 원청인 포스코이앤씨는 전국 현장 103곳의 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이에 해당 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약 한 달간 일감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원청보단 하청업체 소속이나 가장 하층 노동자인 이주노동자들의 타격이 더 크다”(고용노동부 관계자)고 한다. 14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8월 일용근로자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6만7000명 감소한 83만4000명으로 나타났다. 대전의 한 건설 현장에서 근무하는 베트남 국적 이주노동자 4명도 지난주 회사로부터 “일감이 줄어들었다”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제25조)’에 따르면 이들은 3개월 안에 재취업하지 못하면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된다.

이들과 비슷한 신세의 외국인들을 돕는 이주노동자지원센터는 고용노동부 소속 지역별 고용노동지청에 하루 단위로 전화해 건설 현장 일자리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몇 주째 별다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중앙일보가 재구성한 지난 12일 한 센터 관계자와 고용노동부 담당자 사이의 대화는 이랬다.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관계자=“일을 못 하고 있는 외국인이 10명 정도 있는데, 건설 현장 자리가 좀 있을까요?”

▶수도권 고용노동청 관계자=“1곳도 없네요. 건설업계가 요즘 안 좋은 상태긴 합니다.”

▶이주노동자지원센터 관계자=“지역을 바꿔서라도 신청을 해보겠습니다.”

▶수도권 고용노동부 관계자=“옆 동네에 1명 뽑는 현장이 있었는데, 이것도 어저께 마감이 됐네요.”

전문가들은 “사망 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오히려 일자리를 없애고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안대환 한국이주노동재단 이사장은 “정부의 초강경 대응에 이주노동자들이 오히려 유탄을 맞는 상황”이라며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이유가 본인의 잘못이 아닌 경우 3개월이라는 짧은 재취업 기간을 늘려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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