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창업의 길 92. KAIST 학생ㆍ교수 창업

#1. 지난 21일 대전 유성 한국과학기술원(KAIST) 캠퍼스 KI빌딩 1층 홀. 반백(半白)의 노 교수가 스타트업 대표 자격으로 발표에 열중하고 있다. 교학부총장( 2021년 3월~2023년 2월)을 지낸 이승섭(63) 기계공학과 교수다. 이 교수는 이날 교내에서 진행된 ‘KAIST 창업인 동반성장 FAIR’ 중 ‘KAIST 창업기업 IR’에 나와 2022년 자신이 창업한 스타트업 ‘에이투어스’(A2US)를 알렸다. 에이투어스는 ‘초소형 정밀기계 시스템(MEMS)‘을 이용해 물을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작은 초미세 물방울로 분사하는, ’물 정전 분무 모듈‘을 개발하는 기업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물(H₂O) 분자를 수소(H) 원자 1개와 산소(O) 원자 1개로 구성된 방울 즉, ‘하이드록실 라디칼’(OH)로 바꿀 수 있다. OH는 천연 살균물질 겸 강력 산화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성질을 이용하면 반도체 세척이나, 공기ㆍ수질 정화 등 다양한 산업에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기존에도 유사한 기술을 이용한 외국 기업이 일부 있지만, OH가 물(H₂O) 분자로 쉽게 바뀌거나 오존이 발생하는 등 문제가 있어 시장 확보가 어려웠다”며 “에이투어스는 이런 단점을 모두 극복하고 현재 시제품까지 만든 상태”라고 말했다.
#2. 이날 IR에서 가장 먼저 발표한 나노포지에이아이는 AI 예측 모델과 로보틱스 자동화 기술을 결합해 소재 연구ㆍ개발(R&D)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디지털 소재 연구소를 구축하는 스타트업이다. KAIST 산하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김동현(26)씨가 KAIST 수학과학과를 2년 만에 졸업한 고교 후배 배재원(24)씨와 함께 지난 5월 창업했다. 한 달 뒤인 지난 6월엔 퓨처플레이 등으로부터 시드 투자를 유치했고, 딥테크 팁스(TIPS)에도 선정됐다. 김 대표는 이날 발표에서 “AI 기술을 이용하면 기존에 10년 이상 걸리는 소재 개발 과정을 한 달로 단축할 수 있다”며 “내년 중으로 국내 제조 대기업과 사업 연계를 시작하고 2027년부터는 일본ㆍ싱가포르를 필두로 해외 진출에 나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날 IR에는 학생 창업 6개사, 교수 창업 11개사 등 KAIST 내 19개 창업 초기 스타트업들이 참가했다.

삼성전자가 인수한 KAIST 창업기업
KAIST는 서울대와 더불어 명실상부한 한국 최고의 ‘딥테크 창업 대학’이다. KAIST에는 지난 4년간(2021~2024년)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기업만도 20개에 달한다. ‘휴보 아빠’ 오준호 교수가 창업한 로봇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대표적이다. 2021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현재는 삼성전자가 지분 35%를 보유해 삼성그룹의 일원이 됐다. 시가총액으로 계산한 기업 가치는 6조5000억원에 달한다. 박사과정 학생(백승욱 현 의장)이 창업한 인공지능(A) 영상진단 기업 루닛도 2022년 상장됐고, 현재 기업가치가 1조원을 넘는다. 박용근 물리학과 교수가 창업한 토모큐브도 지난해 11월 상장에 성공했다. 토모큐브는 살아있는 세포를 손상 없이 실시간으로 3차원(3D) 촬영하고 분석할 수 있는 홀로토모그래피 기술로 첨단 현미경을 만들어 세포 연구 방법에 신기원을 연 기업이다. KAIST 창업원에 따르면 KAIST 딥테크 창업기업 상위 10개사의 시장가치는 9조7900억원에 달한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교수창업이 연평균 15건, 학생창업은 93건에 이른다.
최명재 창업원 연구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2021년 총 136건에 달하던 창업이 2023년 89건까지 줄어들긴 했지만, 지난해부터 다시 살아나고 있다“며 ”R&D 예산 삭감의 여파로 우리나라 전체 창업 건수가 크게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KAIST 창업은 이례적이지만 본격적인 상승궤도에 올라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아직 상장기업은 아니지만, 과학기술계는 물론 산업계도 주목하는 스타트업도 있다. 국내 최초 소형 우주발사체 스타트업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창업주 겸 대표는 최근 KAIST 항공우주공학과 석사를 졸업한 신동윤(28)씨다. 신 대표는 KAIST 학부 입학 전해인 2016년 만 18세의 나이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를 창업했다. 학생창업이지만 기술력은 교수 창업 이상으로 뛰어나다. 개발 중인 발사체 ‘블루웨일’은 소형이긴 하지만 스페이스X의 최신 발사체 스타십에 들어가는 로켓 랩터처럼 액체메탄 기반이다. 최근까지 총 투자유치 금액이 700억원에 달한다.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의 메탄 우주로켓 엔진 기술은 지난해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각각 ‘국가전략기술’과 ‘핵심전략기술’로 확인받는 성과를 올렸다. 지난 수년간 발사 준비에 난항을 겪었지만,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1단형 준궤도 시험 발사체 ‘블루웨일 0.4’ 발사를 준비하고 있다.

"연구자가 연구 유용성 증명해야"
의과학대학원의 이정호 교수가 2018년 창업한 신약개발 스타트업 소바젠은 지난 9일 이탈리아의 글로벌 제약사 안젤리니 파마에 뇌전증 신약 후보물질을 5억5000만 달러(약 7500억원)에 기술 이전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해신 화학과 석좌교수는 연구논문 피인용이 세계 1%에 드는 석학(HCR)으로, 그간 연구해온 폴리페놀로 다양한 기능성 샴푸를 만들어 화제가 된 인물이다. 2021년에는 폴리페놀 단백질의 갈변현상을 이용해 머리카락 염색 효과를 내는 기능성 샴푸를 만드는 모다모다를, 2023년에는 탈모 증상 완화와 모발 볼륨을 개선하는 헤어케어 샴푸를 생산하는 폴리페놀팩토리를 창업했다. 창업 초기이지만 지난해 이미 7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 매출은 연말까지 350억원가량이 예상된다.
KAIST의 창업 열풍은 공학과 실용 중심의 학풍 때문이기도 하지만, 타 대학에 앞서 2010년대부터 시작한 관련 제도 덕이 크다. 2012년 E*5 학생창업육성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2014년 기업가정신 교육센터, 2015년 창업원 설립 등 학생과 교수 창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체계를 만들어왔다. 또 기업가정신을 고취하는 창업 교육도 본격화했다. 시제품 제작 지원, 초기 자금 확보를 위한 멘토링 등 KAIST의 원천 기술이 실제 비즈니스로 연결되도록 초기부터 성장까지 전주기 지원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배현민 창업원장 겸 KAIST홀딩스 대표는 ”기초과학은 예외로 하더라도 공학분야 연구자가 좋은 연구 결과를 만들어냈으면 이것이 인류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증명할 필요가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창업을 대학 본연의 기능이라 할 수 있는 교육과 연구를 완결하는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원장은 ”최근 기업들은 대학에서 연구개발한 기술을 바로 이전받아 시간을 들여 키워낼 만큼 여유가 없다“며 ”결국은 연구자든 연구자의 동료나 제자가 창업을 통해 기술의 성숙도를 키워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외국에서 창업 노하우 배우려 찾기도
KAIST 창업 열기는 2021년 2월 김영달 아이디스 회장, 고(故) 김정주 넥슨 회장 등 1세대 벤처기업 오너들의 지도교수였던 이광형 총장이 취임하면서 더 뜨거워졌다. 이 총장은 취임사에서 ‘1랩 1창업’을 비전으로 내걸었다. 학생이 창업할 경우에는 최대 4학기이던 휴학을 무기한으로 할 수 있도록 제도도 바꿨다. 교원창업의 경우는 창업 심의, 총장 승인 등 복잡다단한 창업 절차를 폐지해 기존 6개월이던 과정을 2개월로 단축했다. 2022년 1월엔 과학기술원 특별법도 개정됐다. ‘한국과학기술원법’ 제1조(목적)에 인재 양성 및 연구개발에 더해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를 촉진하고 창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한국과학기술원을 설립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안태욱 창업원 연구교수는 “상장에 성공하는 KAIST 창업 기업이 늘어나면서 교수와 학생들 사이 창업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뜨거워지고 있다”며 “최근 들어서는 베트남ㆍ슬로바키아ㆍ아제르바이잔 등 외국에서도 창업 열기와 제도를 배우기 위해 KAIST를 찾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광형 총장은 “대학의 역할이 과거 교육과 연구에서 이제는 창업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며 “기술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대학들 사이에는 인공지능과 생명과학 등 국가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들어내는 창업의 산실 역할 경쟁이 뜨겁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 기술을 추격해오다 이제 성장의 한계에 이른 우리나라 기업들에 절실하게 필요한 게 바로 대학과 연구소의 R&D에서 시작한 신기술과 이를 바탕으로 한 기술사업화, 즉 창업”이라고 덧붙였다.
대전=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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