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지출 ‘사후 검토’ 도입하자

2025-11-20

이 칼럼의 제목은 ‘좋은 정부 만들기’다. 제목처럼 좋은 정부가 되기 위한 방도를 제안하는 것이 칼럼의 목적이다. 원래 정부는 입법·사법·행정을 망라한다. 하지만 흔히 정부라고 하면 행정부를 지칭한다. 행정부가 집행을 담당해서다. 정부의 삼권을 분립한 이유는, 그래야 견제와 균형을 통해 국민을 위한 행정이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행정학자인 내 입장으로 보자면, 입법부 즉 국회의 의의는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룸으로써 국민에게 더 이로운 행정을 만드는 데 있다. 이는 나의 관심 분야인 재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국회의 재정 역할을 따져보자.

이맘때의 국회는 몹시 분주한 게 정상이다. 열흘 남짓 남은 12월2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년도 예산안 규모는 700조원이 훌쩍 넘는다. 국민 1인당 거의 1500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엄청난 규모다. 또한, 내년 한 해의 재정적자는 국민 1인당 200만원이 훨씬 넘을 예정인데, 그러면 국민 1인당 나랏빚은 3000만원에 근접하게 된다.

매년 ‘2주간 벼락치기’ 예산안 심의 반복

국민 각자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갈 이 어마어마한 금액을 누구를 위해 얼마나 어떻게 쓸 것인지를 검토해 확정하는 일, 내년에도 대규모로 빚을 내 국민 부담을 더욱 늘리는 게 온당한지를 판단해 승인하는 일. 얼핏 생각해도 쉬운 일은 아닐 것 같고, 제대로 하려면 몹시나 시간이 걸릴 듯하다.

제도상으로는 국회 예산 심의에 제법 긴 시간이 할당되어 있다. 정부는 법 규정에 따라 9월 초까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 국회의 예산 확정 기한은 12월2일이므로 대략 90일이 심의에 할당된 셈이다. 예전에는 60일이었다. 그런데 60일은 충실한 예산안 심의에 태부족이라는 여론에 따라 한 달을 더 늘린 것이다.

이쯤이면 독자들이 어리둥절할 법하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하겠다고 나선 것은 11월에 들어서이고, 본격적인 심의는 이번주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제도상 90일이 보장되었음에도 실제 심의 기간은 2주 남짓에 불과한 것이다. 올해만이 아니다. 매년 그랬다. 국회는 9월에 개원해 워밍업 마치고 추석 민심 살핀 후 10월의 국정감사가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예산 심의에 착수했다.

대체 2주 이내에 700조원이 넘는 돈의 용처와 규모가 제대로 짜인 것인지, 100조원이 넘는 빚을 추가로 지겠다는 것이 현명한 선택인지 어찌 판단하겠는가. 게다가 2주의 기간이나마 성실하게 심의하는 것 같지도 않다. 국회 관련 뉴스라곤 여전히 여야의 정쟁이 메인을 차지하며, 어쩌다 들리는 예산 관련 뉴스는 소위 코드 예산과 선심성 사업예산을 늘렸다는 것뿐이다. 이쯤 되면 어리둥절함을 넘어서 어처구니가 없다. 그리고 대관절 국회 예산 심의는 왜 있느냐는 회의가 들고, 그렇다면 해외는 어떠한지 궁금해진다. 국회 ‘심의’를 통해 행정부 예산안이 더 좋아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국회 심의 ‘절차의 존재’는 중요하다. 심의 절차가 있기에 예산안이 공개된다. 예산안이 공개되기에 국회 지원기관인 예산정책처를 비롯해 언론과 시민단체가 검증한다. 그 때문에 행정부는 함부로 편성하지 못한다. 심의 자체는 날림일지언정, 예산안의 투명한 공개 덕에 그럭저럭 견제가 이뤄지고 예산 낭비가 예방되는 셈이다.

해외도 사정은 비슷하다. 다른 나라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대한민국 국회의원보다 얼마나 더 투철한 애국심과 고결한 도덕성을 지녔겠는가. 당리당략 앞세우고 이익단체와 지역주민 눈치 보는 것은 도긴개긴일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가 재정 역할을 무난하게 수행하는 나라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리되도록 제도와 절차가 구비되어 있다.

국회가 재정 역할을 잘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는 있지만, 우리에겐 없는 제도와 절차로 대표적인 것은 둘이다. 하나는 재정 총량에 대한 사전 검토이고 다른 하나는 지출에 대한 사후 검토이다.

집행 후 목표 달성 평가해 조정 절차를

재정 총량 사전 검토는, 정부가 향후 수년간 매해 얼마를 걷고 얼마를 쓸 것이며 그 결과로 빚은 얼마나 지게 될지 계획서를 제출하면 국회가 검토해 승인하는 것이다. 국회가 승인했으므로, 행정부 예산 편성에 구속력을 지닌다. 우리도 매년 예산안 제출 때, 5년간의 재정 총량 계획서를 함께 제출한다. 하지만 제출에 그칠 뿐 국회 승인은 필요 없고 구속력도 없다. 그러니 정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국회 승인을 받게 되면 재정 총량 계획을 세울 때 신중하게 되고, 구속력이 있으니 맘대로 빚을 늘릴 수 없게 된다.

지출 사후 검토는, 예산 집행 이후에 애초의 사업 목표가 얼마나 달성되었는지 평가하고 해당 사업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따져서 이후의 사업예산을 조정하는 것이다. 나는 예산 심의 과정에서 코드 예산이나 선심성 쪽지예산이 끼어드는 것을 탓하지 않는다. 예산의 정치적 성격을 감안하면, 아예 일정 규모는 그런 용도로 배정해도 괜찮겠다. 그보다는 정부가 야심 차게 내세우는 대규모 사업, 이를테면 AI 사업예산이 효과적으로 쓰일지가 훨씬 우려된다. 이런 사업은 명분이 뚜렷하고 예전에 없던 것이라 예산만으로 효과성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천생 집행이 이뤄진 후에야 잘한 것과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AI 사업은 다년도 사업이다. 그러니 내년도 집행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 그 피드백을 후년도 예산에 반영하면 후년부터는 훨씬 사업 성과를 높일 수 있다. 이게 지출 사후 검토가 중요한 까닭이다. 다수 국가는 집행 성과를 꼼꼼히 따져 이듬해 예산에 반영하는 강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우리는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비난한다. 우리 국회가 실망스러운 데는 국회의원들의 자질 탓도 일부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국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제도와 절차가 미비한 탓이 크다. 이런 제도·절차 중에는, 선거구제 개편처럼 이해가 첨예해 도입이 어려운 것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재정 관련 제도·절차는 국회의원들에게 불리할 게 없는 것들이라 맘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도입할 수 있고, 도입하면 재정 성과 향상에 제법 기여할 수 있다. 역량 있는 국회, 좋은 정부를 만들기 위해 쉬운 것부터 차근차근 마련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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