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강화’ 외치지만, 놓쳐버린 ‘돌봄노동자 권리’

2025-10-29

29일 ‘국제돌봄의날’…국회서 증언대회 열고 고충 공유

“디스크 파열돼도 근무” “최저임금보다 낮은 처우” “공원서 식사 해결”

“민간에 맡겨 법적 사각” 지적…‘돌봄 국가책임제’ 맞춰 제도 개선해야

돌봄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아파도 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기관, 가정의 돌봄 수요가 커지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는 열악하다. 이재명 정부가 ‘돌봄 국가책임제’를 공언한 만큼, 관련 인력을 늘리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와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민·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은 28일 유엔이 지정한 ‘국제돌봄의날’(10월29일)을 맞아 국회에서 돌봄노동자 증언대회를 열었다. 물리치료사, 간병사, 특수학급종일제강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은 법의 회색지대에서 겪는 고충을 공유했다.

인천의 특수학교 방과후 강사 이원주씨는 장애아동을 들어올리는 일이 많다 보니 발가락에 금이 가고 허리디스크가 파열되는 부상이 잦다. 그러나 대체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제대로 쉴 수 없다. 이씨는 “대체인력을 구해 관리자의 눈치를 견디며 겨우 병가를 써서 수술받고, 다 낫지도 않았는데 깁스를 하고 일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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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의 과도한 민원과 아동학대 신고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교육청의 교육활동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교사와 달리 공무직인 특수학급강사는 학교와 교육청의 법적 도움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복지시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중증장애인거주시설 물리치료사 박미진씨는 휴가를 신청할 때마다 “대체인력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장애인시설에 중증장애인 4.7명당 직원 2명이 배치돼야 하지만, 많은 민간 기관들은 이 기준을 지키지 않는다.

인력 부족은 과로, 부상으로 이어진다. 박씨는 “좁은 치료대에서 떨어지려는 환자를 보호하다 허리가 손상돼 시술과 재활이 필요했지만, 사용자는 병가와 산재를 병행할 수 없다며 산재 처리를 거부했다”고 했다. 복지부·지자체에 도움을 청했지만 답은 “개입하기 어렵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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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급여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간병사 송숙희씨는 “월 25일 간병노동을 하며 1일 10만원을 받고 있다. 시급으로 환산하면 4500원”이라며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연장근로수당이나 야간수당은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유승현씨는 취약계층 노인을 방문해 식사 준비 등을 돕는 생활지원사다. 유씨는 “늘 이동하며 일해야 하는데 혹서기, 혹한기에 잠깐 들러 쉴 공간이 없어 공원에 앉아 식사를 해결한다”며 “생활지원사도 배달라이더 같은 이동노동자인 만큼 쉼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주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돌봄 공급을 강화했지만 돌봄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에 관한 법제는 부족하다”며 “공공의 책무성을 회피하고 민간 위탁이나 파견 형태를 조장하고 있다”고 했다. 엄길용 공공운수노조위원장은 “돌봄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돌봄노동자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처우 개선과 인권 보호가 시급하다”고 했다.

▼ 김남희 기자 nami@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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