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검찰이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오는 11월 26일 선고예정이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4-1부(부장 박혜선·오영상·임종효)는 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의 결심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5년, 고 전 대법관에게는 징역 4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소위 ‘사법 블랙리스트’ 언론 보도가 나오며 법원이 자체 조사를 시작했고, 검찰 수사가 이어져 왔다”며 “법원 자체 조사에서도 다수 행위가 사법행정권 남용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사건 재판 등에 부당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와 그 소모임인 인권과사법제도모임(인사모) 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압박한 혐의 등에도 “사법행정권의 부적절한 행사”라며 “원심에 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은 최후진술을 통해 “검찰은 수없이 많은 검사를 동원해 법원 내부 자료를 송두리째 가져가고, 법원 구석구석을 먼지털기식으로 뒤졌다”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극도의 왜곡과 과장, 견강부회식 억지로 진실을 가리고 대중을 현혹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의 항소이유서에 대해서는 “터무니없이 재판부 인격과 자세를 원색적으로 폄훼하고 공격하는 언사를 쓰는 건 정말 품위를 잃은 행동”이라며 “원심 재판부에 대해 참지 못할 정도의 모욕적 언사가 비일비재하고, 자신들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을 ‘법꾸라지’라는 저급한 용어까지 쓰면서 욕설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연 법률가, 그것도 검사가 작성한 문서인지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랐다. 참 부끄러운 일”이라며 “법조계를 아끼는 사람으로서 이런 문제에 대해 검찰의 성찰이 없어 참 슬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1심 재판부는 수십만 쪽에 이르는 수사 기록과 소송 기록, 끊임없이 이어지는 증인신문 속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해 오랜 기간 혼신의 힘을 다했다”며 “검찰은 흑을 백이라고 주장하면서 항소를 제기하고 모욕까지 가하고 있다. 이 항소는 마땅히 기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은 강제징용 사건 등 재판을 지연시켜 상고법원 도입 등 숙원사업을 대가로 얻으려 했다는 혐의(직권남용)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 밖에 법관 블랙리스트 작성, 헌법재판소 견제 등 모두 47개 혐의로 기소돼 약 5년간 재판을 받았다.지난해 1월 1심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의 모든 혐의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이 사건은 2019년 2월 11일 기소일로부터 1심 결과가 나오는 데만 1810일이 걸려 ‘재판 지연의 교과서’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한편 이들은 1심 진행 중이던 2020년 변협으로부터 결격 사유가 없다고 판단 받아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