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불시에 미등록 이민자를 체포하는 일이 잦아지자 단속 위험을 피하려고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비대면 수업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 미 당국의 국경 장벽 정책이 이민 가정 아동들의 교육 받을 권리를 빼앗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CNN방송은 9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 사는 미등록 이민자 학부모들이 자녀가 당국에 붙잡힐까 우려하며 원격 학습을 선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두 자녀가 있는 미등록 이민자 남성은 “(단속은) 정말 끔찍한 두려움을 준다”며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 더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하자마자 학교 등 ‘민감한 장소’에서 이민법 집행을 금지하는 연방법을 없애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학교와 학교 인근에서의 이민 단속이 급증했다. 이에 더해 미 당국은 합법 체류 서류가 없는 미성년자 수백 명을 보호자 없이 추방하려다 재판부 판결 때문에 집행을 멈췄다.
이미 이민 단속이 이뤄진 지역의 학생 출석률은 떨어지고 있다. 스탠퍼드대가 지난 6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의 5개 학군에서 이민 단속을 시작하자 2개월 만에 결석률이 이전보다 약 22% 늘어났다. 트럼프 행정부가 주 방위군을 배치하겠다고 나선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일부 학교 출석률도 최근 50%까지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LA, 산타아나 등 이주민이 많은 지역의 몇몇 학교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수업을 마련했다. LA 교육청은 학생들이 외부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통학버스 노선을 추가했고, 등·하교 자원봉사자를 늘리기로 했다. 그런데도 일부 학부모들은 자녀의 등교를 거부하고 있다.
텍사스주 노스오스틴의 게레로톰슨 초등학교 교사들은 친척이 당국에 체포되는 일을 지켜본 학생들이 학교에서 흐느껴 울거나 수업 중 부모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고 말했다. 또 급식을 모니터링하거나 학교 행사를 돕는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줄었다고 했다.
미국은 1982년 ‘플라이러 대 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체류 형태와 상관없이 모든 아동에게 공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지만 최근 이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재판부는 체류 신분 때문에 교육 기회를 빼앗는 것은 차별 행위이며 아동이 교육받지 못하면 사회적·경제적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들어 이 같은 판결을 내렸다.
비영리단체 ‘미국 이민 위원회’는“수십만 명의 미등록 이민 가정 미성년자가 교육을 받지 못하면 빈곤, 사회적 소외, 불평등의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