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SF 작가로서 미래를 예측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대의 신화를 말하고자 한다.
단편소설 ‘종이 동물원’으로 세계의 인정을 받은 SF 작가, 켄 리우(49)가 한 말이다.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자신의 소설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켄 리우 작가는 지난 13일 서울 강서구 코엑스 마곡에서 열린 MCT 페스티벌 국제콘퍼런스 연사로 초청돼 처음 한국을 찾았다.

중국계 미국인 작가인 리우는 2011년 미국에서 단편집 『종이 동물원』을 냈다. 그 소설집 속 표제작으로 2012년 SF 3대 문학상인 휴고상·네뷸러상·세계환상문학상을 석권했다. 이 기록을 세운 인물은 켄 리우 작가가 유일하다.
‘종이 동물원’은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혼혈 아동이 주인공으로, ‘카탈로그에서 골라 데려온 배우자’인 어머니를 혐오하며 성장하던 주인공이 어머니의 사망 이후 처음으로 그녀의 삶을 마주하는 이야기다. 현재 한국에 출간된 그의 소설은 『종이 동물원』(2018),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2020),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2023), 『은랑전』(2024)으로 모두 단편소설집이다.
1976년 중국에서 태어나 열한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간 그는 하버드대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SF 소설 작가지만, 그 전에 마이크로소프트 프로그래머로 일했고, 하버드대 로스쿨 졸업 후 7년 간 변호사로 근무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리우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각기 다른 일이지만 나의 관심사에서 비롯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이 일들은 상징을 다룬다”고 소개했다.
SF 작가로서 리우는 ‘기계’를 상징으로 다룬다. 그는 “SF 소설은 사람들이 꿈꾸는 장소”라며 “그 꿈은 기술과 기계라는 상징으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기술이 “인간과 대립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표현”인 이유다.

역사적 배경을 자주 활용하는 그의 소설은 ‘대체 역사 소설’로 분류되기도 한다. 일본군 731부대의 잔학성(『종이 동물원』)을 다루거나 1645년 청나라군이 양저우에서 자행한 대량학살 사건을 소설에 담기도 했다.( 『신들은…』)
한국 역사와 문화도 다뤄졌다. 『신들은…』 속 ‘북두’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했으며, 『어딘가 상상도…』 속 ‘매듭묶기’에 등장하는 글자 체계는 한글을 참고하여 고안됐다. 리우는 “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역사에 관심이 많다”며 “역사는 공동체가 스토리텔링하는 방식이며, 어떤 국가든 ‘우리는 누구이고 어째서 이런 형태로 살고 있는지’를 다루는 공통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어떤 면에 관심을 가졌는지 묻자 그는 “한국의 경우 몇 세대가 지나지 않아 현대화가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여러 사람들, 특히 예술가와 과학자의 노력, 산업적 노력이 있었다는 게 인상적이다. 한국의 현대성을 깊이 이해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아시아 문화를 자주 다뤄왔지만, 내 작품은 미국 문화에 속해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넷플릭스 드라마로 세계적 인기를 끈 류츠신의 소설 『삼체』를 영어로 번역해 2014년 영미권에 소개한 번역자이기도 하다. 번역과 소설 쓰기 등 창작의 결과물을 인공지능(AI)이 무단 활용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선 공감을 표했다.
“예술가로서 인공지능이 작품을 허락 없이 학습하는 것 등에 대한 보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엔 공감하나, 이것은 단기적 관점의 우려라고 생각한다. 나는 장기적 관점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고, 그런 것들에 관심이 있다.” 그는 인공지능의 역할을 고민한 과정을 미국에선 다음 달, 한국에선 다음 해 여름에 출간될 ‘All that We See or Seem’이라는 제목의 소설에서 보여줄 예정이다. “창작에 인공지능은 크게 쓸모가 없지만, (앞으로는) 창작자로서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고민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