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러브콜 받은 ‘마스가’ 프로젝트의 교훈

2025-09-04

트럼프 행정부가 각국과 진행한 관세 협상, 그리고 정상회담을 지켜보며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다시 실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향하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는 우방도, 동맹도 없다. 오로지 미국의 국가이익(America Only)만 있을 뿐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필자는 지난 4월 기고(‘미국의 해양 안보 위기, 남의 일이 아니다’)를 통해 미국의 당면 문제에 맞서 조선 및 해운산업을 활용해 대응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이 절실한 조선업의 부활, 즉 ‘마스가(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미국의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를 우리가 마련해 제시하면서 관세 협상의 위기를 일단 넘겼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마스가’는 기대 이상의 역할을 했다.

조선 협력으로 협상 위기 넘겨

자만은 금물, 철저한 준비 필요

조선·해운 수주로 국익 챙기고

해양 자강력 강화 계기 삼아야

미국 해양 능력 쇠퇴, 타산지석으로

마스가 프로젝트가 진정한 빛을 발하기 위해선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한국의 조선업이 한 단계 성장해야 그 가치가 유지되고, 앞으로도 협상에서 지렛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제도 만만치 않다. 우선 일본을 비롯한 유럽의 조선 강국과의 선박 수주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나 동남아, 남미 등 미국 이외의 시장을 확보하는 게 절실하다. 그런 차원에서 내년부터 한국 기업이 참여할 예정인 미국 최대 해양방위산업 전시회(Sea Air Space)는 우리의 앞선 선박 건조 능력을 과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선과 함께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해상 운송 산업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대로 미국은 조선뿐만 아니라 해운산업 역시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한번 몰락한 해운산업을 부활하는 데는 적어도 몇십 년이 걸린다. 한국은 세계 5대 해운 강국이다. 한국의 앞선 조선 기술과 해상운송을 접목한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무엇보다 조선과 해상 운수 산업을 안보 차원에서 접근하는 넓은 시야와 준비가 필요하다. 트럼프가 한국에 손을 내민 것도 미국 안보에 조선 산업의 부활이 절실해서다. 안정적인 병참선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다. 전 세계를 상대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바다는 중요한 병참선이다. 전 세계 해양 통제권을 통해 패권을 유지해 온 미국의 해상 수송 능력 저하는 심각한 안보 위협일 수밖에 없다. 미국이 현재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건 탈냉전 이후 해양세력의 경쟁상대(옛 소련)가 없어지며 조선과 해운 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중단한 결과다. 중국의 조선과 해상 운송 능력이 미국을 역전한 지 오래다. 미국은 이런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방위 예비함대(NDRF:National Defense Reserve Fleet), 즉응 예비대(RRF:Ready Reserve Fleet), 해운 안보 프로그램(MSP:Maritime Security Program) 등 다양한 동원 제도를 운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신해양전략(SHIPS FOR AMERICA ACT)으로 250척의 전략 상선대를 확보하겠다는 계획도 최소 10년 이상이 걸린다.

한국형 마스가 마련을

문제는 이런 미국의 해양 능력 쇠퇴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합작전계획에 따르면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과 전쟁 물자의 운송은 미국이 맡는다. 그런데 미국은 이미 1981년 증원 전력을 제외한 전투 근무 지원 물자 수송을 한국 국적 선박(KFS:Korea Flag Ship, 60여 척)에 맡길 만큼 이미 운송 능력이 약화했다. 우리 입장에선 전쟁 물자 전체를 우리가 수송해야 하는 상황을 상정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다. 앨브리지 콜비 국방정책 차관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한반도 문제는 한국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발언 역시 이런 현실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중·러와 한·미·일 대립 구도가 극명해지며 한반도 안보 상황은 악화일로다. 지난 3일 중국의 전승절 열병식 때 북·중·러 정상이 망루에 함께 오르는 장면은 신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특히 북한과 러시아는 지난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버금가는 군사동맹 조약을 맺었다.

가정이긴 하지만 대만과 한반도에 동시에 군사적 상황이 발생한다면 미군 증원 세력 및 주요 무기 운송 통로인 서태평양의 해상 수송로가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중국이 한반도 주변 해역을 봉쇄할 수도 있다. 대륙으로 막혀 있는 한국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안보에 있어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한국형 마스가 프로젝트를 마련하고, 유사시 한국이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원 선박 제도의 점검이 시급하다. 우리의 동원 선박 제도는 크게 물자를 수송하는 선박과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선박으로 구성된다. 수송 선박의 경우 연안 수송 임무를 맡기로 돼 있어 대부분 5000t 미만이고, 그것도 20년 이상 노후했다. 선장과 기관장을 제외한 상당수의 선원도 외국인이어서 유사시 임무를 기피할 수 있다. 안보에 동원하는 선박(MSP)에 연간 500만 달러를 지급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정부의 보조금이 한 푼도 없다. 임무 숙달을 위한 훈련도 통신 훈련으로 대체하는 실정이다. 전쟁 수역을 통과하는 해상 수송로의 위협 평가와 선단 보호 계획조차 없다. 이대로라면 어떤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유사시 수송 소요를 다시 계산해 선령 20년 미만의 대형 선박을 추가로 지정하고, 안보 전략 선대(가칭)를 운영할 수 있는 한국인 해기사(자격증 소지 선원) 양성과 정부 보조금 확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해당 선박에 대한 교육훈련과 국적 상선대를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을 지금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마스가를 동원해 미국과 협상의 위기를 넘겼다고 취해 있을 게 아니라 조선·해운과 관련한 기술 발전, 그리고 정책을 되돌아보고 한국형 마스가를 마련해야 하는 시점이다.

최윤희 전 합참의장 중원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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