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스라엘 수교 60주년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5-12

1965년 독일(당시 서독)과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수립에 따라 롤프 프리데만 파울스 초대 주(駐)이스라엘 독일 대사가 텔아비브에 부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20년이 흘렀으나 독일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2차대전 기간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로 600만명 넘는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 시위대는 파울스 대사를 향해 물병과 토마토를 던졌다. 반(反)독일 구호를 외치는 성난 군중 속에 당시 26세의 청년이던 레우벤 리블린도 있었다.

리블린은 훗날 정치인으로 대성했다. 이스라엘 국회의원과 국회의장을 거쳐 7년 임기의 대통령(2014∼2021년 재임)까지 지냈다. 그가 국가원수이던 2015년 이스라엘·독일 수교 50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해 독일을 방문한 리블린 대통령은 요아힘 가우크 당시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큰 환영을 받고 서로 어깨를 감쌌다. 리블린은 홀로코스트의 흑역사를 의식한 듯 “인류의 존엄성에 대한 공격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국제적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우크는 “독일인은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2022년 독일과 이스라엘 간에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가 세워졌다. 뮌헨 올림픽 참사 50주기를 맞아 독일이 이스라엘 선수단의 희생을 막지 못한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약속한 것이다. 독일 뮌헨에서 하계 올림픽이 한창이던 1972년 9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연계된 테러 집단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해 인질극을 벌인 끝에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독일 정부는 50년 만에야 인질극 대응에 실패했음을 시인하고 유족에 배상금을 지급키로 했다. 양국 대통령은 “비극의 역사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며 두 손을 맞잡았다.

12일은 독일·이스라엘 수교 60주년 기념일이다. 이에 요한 바데풀 독일 외교부 장관이 11일 이스라엘로 달려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정부 고위 인사들과 만났다. 바데풀은 이스라엘 안보를 위한 독일의 헌신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사는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세가 도를 넘은 것 아니냐고 우려를 제기했다. 홀로코스트라는 원죄(原罪) 때문인지 그간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무조건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주변 아랍권 국가 및 무장 단체들과 잇따라 충돌하고 그 결과 수많은 민간인이 사망하며 독일 국내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확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수교 60주년을 맞은 독일·이스라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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