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 데이터센터 붐…‘아시아 AI-데이터 공동체’ 구상 펼쳐야

2025-06-24

지난 20일 국내 최대 규모의 울산 AI 데이터센터의 출범식이 열렸다.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AWS)가 공동 추진하는 이 프로젝트는 100㎿규모로 시작해 1GW까지 확장될 예정이다. 최태원 SK 회장은 이를 “최고의 AI 고속도로”라고 표현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방에서도 첨단산업이 가능하다는 모범 사례”라며 국가 균형 발전을 강조했지만, 이는 단순한 지역 정책을 넘어 인공지능(AI) 인프라를 국가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적 선언으로 읽힌다. 이제 ‘AI 고속도로’가 울산을 넘어 아세안과 연결될 수 있을지 고민해볼 시점이다.

저렴한 에너지와 유연한 규제로

동남아 데이터센터 시장 급성장

한국, 핵심 기술 공급자 될 수도

동남아시아 데이터센터 시장은 2023년 누적 투자액이 137억 달러를 기록하며 급성장 중이다. 연간 매출은 이미 102억 달러(2023년 기준)에 달하며, 투자 규모는 연평균 14.2% 성장해 2030년에는 305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글로벌 평균 성장률(11.2%)을 상회하는 수치다.

싱가포르가 본래 아세안 데이터센터 허브였지만, 토지·에너지 제약으로 신규 건설이 중단되며 투자가 인근 국가로 확산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60여개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가운데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AWS, 엔비디아 등 글로벌 빅테크가 데이터센터에 약 230억 달러, AI 인프라까지 포함하면 약 300억 달러 이상 투자했다. 특히 싱가포르와 인접한 조호르 지역에 투자가 집중되며 동남아 데이터센터 허브로 급부상하고 있다. 태국도 AWS의 110억 달러 투자를 기반으로 데이터센터 신흥 강국으로 부상했다.

흥미로운 대상은 태국 시장의 최대 수혜 기업인 대만의 델타일렉트로닉스다. 삼성전자보다 작지만 전력공급장치와 냉각시스템 등 핵심 기술을 앞세워 태국 상장기업 시가총액 1위에 올랐고, 2024년 매출의 30%를 데이터센터에서 창출했다. 반면 한국의 주요 기업은 기술력과 자본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이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말레이시아, 중국 AI 기업 허브로 부상

한국은 수도권 집중 해소와 전력 제한, 주민 반발 등으로 데이터센터의 신규 투자가 어려운 구조다. 반면 말레이시아는 저렴한 에너지, 유연한 규제, 미·중 갈등 회피 경로로서의 매력을 바탕으로 중국 AI 기업의 허브로 급부상 중이다. 바이트댄스와 알리바바 등 수천 개의 중국 기업이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를 이용 중이다.

이처럼 아세안의 데이터센터 붐은 디지털 경제 성장과 데이터 주권 정책, 지정학적 중립성이라는 3가지 구조적 요인에 기반한다. 하지만 인재 부족과 에너지 지속가능성이라는 한계도 존재한다.

예컨대 AI 이미지 한장을 생성하는 데 냉장고 30분 가동 분량의 전력이 소요되며, 아세안 국가의 전력은 여전히 절반가량을 석탄에 의존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5년까지 연 1900억 달러 규모의 재생에너지 투자가 필요하다고 본다.

새 정부의 과감한 AI 정책은 한국이 아세안과의 기술 협력의 중심으로 나아갈 기회다. 민간 전문가를 청와대 AI 수석으로 발탁한 것 역시 변화의 신호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 접근법은 ‘강대국 줄서기’를 지양하는 아세안의 전략적 유연성과 접점을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의 인재 부족과 에너지 전환, 기술 표준 부재는 오히려 한국에 기회다. 스마트그리드와 고효율 전력 장비, 메모리 반도체, 배터리 관리 시스템 등에서 한국은 데이터센터 핵심 기술 공급자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실제 한국 기업의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신재생 발전소를 운영 중이고, 한국투자금융그룹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고 있다. 하지만 태국의 델타일렉트로닉스처럼 기술과 정책, 시장을 정교하게 연결한 성공 사례를 만들려면 기업 단위를 넘어선 정부의 전략이 필요하다.

한-아세안 AI 클러스터 형성 가능

한국과 아세안의 ‘AI-데이터 공동체’ 구상이 필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단순한 기술 수출이나 투자 유치를 넘어, 상호 보완적인 디지털 생태계를 함께 구축하자는 접근이다. 한국의 반도체·전력 효율화 기술과 아세안의 데이터 수요·재생에너지 역량이 결합한다면, 미·중 양극 체제 바깥에서도 경쟁력 있는 AI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다.

다가오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3, 한-아세안 정상회의는 이러한 새로운 협력 모델을 구체화할 외교 무대가 될 수 있다. 일본이 ‘아시아 제로에미션 공동체’를 통해 그린 전환을 주도했듯, 한국도 기술·디지털 분야에서 아세안과의 실질적 협력의 틀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모델은 아세안을 넘어 중동과 중남미 등 신흥시장에도 적용 가능한 ‘한국형 디지털 협력 전략’으로 발전할 수 있다.

AI 시대의 승자는 가장 빠른 칩을 만드는 나라가 아니라, 가장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한 나라가 될 것이다. 한국이 아세안과 함께 만들어갈 ‘AI-데이터 공동체’는 그 미래를 향한 현실적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고영경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디지털통상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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