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SK텔레콤, CJ올리브네트웍스 등 주요 기업들이 잇달아 사이버침해 사고를 겪으면서 더 강력한 보안 수요도 커질 전망입니다. 해킹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는 양자암호통신(QKD)이 대표적인데요. QKD는 다만 양자기술 특유의 민감성으로 인해 까다롭고 그만큼 값비싼 구현 조건을 필요로 합니다. 상용화를 막는 걸림돌이죠. 이 걸림돌을 넘어서기 위한 최근 연구성과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중국과학기술대 연구팀은 표준 광섬유로 이뤄진 403㎞ 구간의 QKD 실험에 성공했다는 연구성과를 미국물리학회(APS)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피지컬 리뷰 엑스’에 이달 2일(현지 시간) 발표했습니다. APS는 ‘실용적인 양자암호를 향해’라는 게시글에서 이 논문을 소개하며 “연구팀이 상업용 레이저를 사용해 현실적인 조건에서 양자키를 배포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습니다.
QKD는 앞선 편에서 설명했듯 입자의 양자중첩을 응용해 보안 성능을 높인 기술입니다. 현재의 통신은 전자나 광자가 0이나 1의 디지털 정보를 지니고 각각 전선이나 광섬유를 통해 전달되지요. 반면 QKD는 입자가 0과 1의 정보를 중첩해서 가집니다. 정보전달 과정에서 해커가 엿본다한들 입자의 정보가 0인지 1인지 알 수 없죠. 게다가 탈취나 도청 같은 해킹 행위 자체가 양자중첩 상태를 무너뜨리는 외부 영향에 해당합니다. 해킹 행위가 양자중첩 상태를 무너뜨리고 입자의 정보가 파괴돼버리니 이론적으로는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QKD는 대신 양자컴퓨터의 큐비트처럼 외부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구현 조건이 까다롭겠죠. 지금 널리 쓰고 있는 통신수단인 광섬유나 전선 기반의 상용 통신망으로 양자 정보를 전달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가령 광섬유도 유리 같은 물질이기 때문에 입자가 이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충돌이나 산란 같은 수많은 외부 영향을 받게 됩니다. QKD는 그래서 극저온 환경 등 외부 영향을 최대한 차단하고 입자를 안정화할 수 있는 특수 조건이 필요한 것이죠.
APS가 중국 연구팀의 성과를 고평가한 배경에는 이 같은 맥락이 있습니다. QKD를 기존에 쓰는 표준 광섬유로, 그것도 403㎞라는 먼 거리를 ‘비교적 잘’ 구현했다는 것이죠. 거리도 거리지만 초당 47.8비트라는 속도, 즉 메시지 전송나 금융거래 작업이 가능한 수준의 통신 속도를 달성했다는 게 연구팀 설명입니다.
이번 연구팀은 중국 양자기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판젠웨이 중국과학원 원사가 이끌었습니다. 그는 앞서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위성 ‘모쯔(묵자)호’, 또 최근 1만 2900㎞라는 세계 최장거리를 경신한 신형 위성 ‘지난(제남) 1호’는 물론 구글에 맞먹는 양자컴퓨터 칩 ‘주총즈 3.0’ 개발까지 이끈 인물입니다. 양자인터넷의 이론적 토대인 양자전송 실험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안톤 차일링거의 제자이기도 하죠.
중국만 이런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일본 도시바의 유럽법인 연구팀도 상용 통신망을 활용해 254㎞ 거리의 QKD에 성공했다는 연구 성과를 지난달 2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습니다. ‘애벌런치 광다이오드’라는 상온 가까이에서 작동하는 값싼 장비를 활용해 극저온 냉각 없는 일반 광섬유 케이블로 정보를 전송했습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역시 관련 상용화 기술을 개발하고 한국첨단소재 등 민간 기업에 기술이전한 성과가 있고요.
윤천주 ETRI 양자기술본부장은 “QKD는 송신부와 수신부 한 세트를 도입하는 데만 수억 원의 비용이 들어 일반 기업이 도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며 “장비 소형화와 저가화 기술 개발이 관건”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해킹 위협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최근 연구 노력들이 양자암호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