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그룹이 바이오로직스와 에피스를 떼어내는 대수술에 돌입했다.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담당하는 두 기업을 분리해 이해상충 우려를 걷어내고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다만 이면에는 지배구조에 변화를 주려는 그룹 차원의 의지도 반영된 것으로 읽혀 곧 해외에서 돌아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메시지에 관심이 쏠린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이재용 회장은 약 보름 전 일본에서 개막한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오사카 엑스포) 참관차 출장길에 오른 뒤 현지에서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며, 조만간 귀국할 것으로 점쳐진다.
삼성 안팎이 이재용 회장의 일정에 눈을 떼지 않는 이유는 최근 들어 그룹 내 바이오 기업을 중심으로 변화가 감지된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그 의미를 공유하지 않겠냐는 기대감에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2일 계열사 바이오에피스를 분리하는 지배구조의 개편을 선언했다. 로직스에서 자회사 관리와 신규 투자를 맡아 온 사업 부문을 떼어내 삼성에피스홀딩스를 만들고 여기에 삼성바이오에피스를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게 골자다. 분할 비율은 로직스 0.65대 에피스홀딩스 0.35로 설정됐으며, 오는 10월 이 작업이 순조롭게 끝나면 두 기업은 각자의 위치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로직스 측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떨어뜨림으로써 각각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해당 사업을 병행하는 한 이해충돌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고, 투자도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우니 문제를 해소하려는 것이란 전언이다.
그러나 재계에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단순한 계열사 재배치를 넘어 향후 그룹 지배구조 전환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즉, 수뇌부에선 '큰 그림'을 그리지 않았겠냐는 얘기다.
모든 것은 삼성이 지배구조 측면에서 과제를 안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뇌관으로 재부상한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이는 보험회사의 계열사 채권과 주식 보유한도 산정 기준을 취득원가가 아닌 공정가액(시가)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행법에서 보험사의 계열사·주식 투자 한도를 총자산의 3%로 제한하는데, 이를 원가로 계산하면 위험을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만일 법안이 국회를 넘어서면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8.51% 중 상당량을 처분해야 하는 탓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새롭게 출범하는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일종의 '전략 자산'으로서 활로를 열어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물산이 에피스홀딩스 지분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삼성생명으로부터 전자 지분을 취득하는 등의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흘러나온다. 플랜이 현실화한다면 그룹의 뼈대는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바이오로직스'의 흐름으로 재편된다. 설령 삼성물산이 에피스홀딩스 지분 전량(43.06%)을 처분해도 전자(지분율 31.22%)를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는 구조다. 다른 한 편에선 삼성물산의 바이오 지분과 생명의 전자 주식 일부를 맞바꾸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물론 삼성 측은 '사실과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당장 지배구조의 큰 틀에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닐뿐더러, 바이오와 에피스의 분리는 어디까지나 사업 경쟁력과 투자 효율성 측면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이들은 강조하고 있다.
게다가 각 시나리오엔 반론도 존재한다. 에피스 시총(약 26조원으로 추산)을 고려했을 때 물산 측이 주식을 모두 처분해도 전자 지분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매각대금의 일정 비율을 배당 등에 쓰도록 규정한 보험업법상 '스왑'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재용 회장의 의중이 관건이다. 그는 작년 5월 유럽 출장 후 귀국하는 길에 '봄이 왔다'며 취재진에 묘한 여운을 남긴 뒤엔 별다른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이후 글로벌 불확실성과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이 악재에 직면하는 등 제반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 실적이 회복세로 돌아서는 등 호재가 잇따르는 만큼 이번엔 지배구조나 미래 사업 관련 메시지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