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황혼과 문지석 검사의 눈물

2025-10-29

문지석 광주지검 부장검사는 국정감사에 두 차례 참고인으로 나와 자신이 인천지검 부천지청 부장검사로 있을 때 지청장·차장이 쿠팡의 일용직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무혐의 처분하라는 압력을 가했다고 눈물의 양심고백을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특히 ‘퇴직금 200만원’이라는 액수가 감정선을 건드렸다고 본다. 일용직 노동자에게 이 돈이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니는지 깊이 공감하지 않았다면 거기에 검사직을 걸지도, 국감장에 나와 울먹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윤석열은 검사 시절 국감에서 “나는 조직에 충성하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 외압을 폭로했다. 이 폭로는 정국에 폭탄을 던지는 스펙터클이 있었다. 검사는 영웅 아니면 반영웅의 이미지로 표상됐다. 영웅과 반영웅의 공통점은 사람들 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때의 영웅이 시대의 반영웅으로 전도된 무수한 역사적 실례가 있거니와, 이를 보여주는 비근한 예가 윤석열이다.

그에 비해 문 검사의 폭로 내용은 어찌 보면 소소하다고 할 수 있겠다. 증언하며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내 목을 먼저 치라’는 식의 상투적·무사적 검사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그러나 그렇기에 거기에선 보통의 삶에 대한 견실하고, 핍진한 감각이 느껴진다.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의 온도를 지니고 바로 옆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문 검사를 보고 “검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같은 반응이 나오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문 검사의 양심고백은 소소해서 시시한가. 그 정반대라고 본다. 쿠팡은 일용직 노동자의 퇴직금 지급 범위를 줄이기 위해 2023년 취업규칙을 일방적으로 변경했다. 문 검사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 혐의로 쿠팡을 기소해야 마땅하다고 했지만 사건은 지청장과 차장검사 뜻대로 불기소 처분됐다. 핵심 압수물의 대검 보고 누락, 압수수색 정보의 사전 유출, 검찰 윗선과 쿠팡의 유착 등 위법이 있었는지는 상설특검이 밝힐 일이다. 그러나 그 전에라도 “무혐의가 명백한 사건이고, 다른 청에서도 다 무혐의로 한다. 괜히 힘 빼지 마라”라고 했다는 당시 부천지청 차장검사의 발언은 이런 유의 사건이 검찰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짐작하게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범에 대한 소극적 수사와 무른 구형 관행은 얼마나 다를까. 문 검사는 양심고백을 통해 검찰에 만연한 일상적이고 평범한 악의 실체를 보여준 것인지 모른다.

문 검사는 “(자신이) 조직 내에서는 안 좋게 평가받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회 법사위는 지난 23일 문 검사가 출석한 가운데 서울고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였다. 그날, 그 자리에서 찍힌 사진 한 컷에 많은 것이 함축돼 있다. 국감이 정회된 뒤 이동하는 검사들을 뒤로하고 문 검사가 죄인처럼 앉아 있는 그 사진은 문 검사를 보는 검찰 내부의 싸늘한 시선, 국민 정서와 검찰 정서의 아득한 간극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검찰에서 고립된 건 문 검사이지만 국민들로부터 유리돼 자기만의 성채에 갇힌 건 검찰이다.

개정 정부조직법이 내년 10월 시행되면 검찰청은 폐지되고 수사·기소는 분리된다. 검찰이라는 영웅·반영웅의 무대는 사라지고, 검사들을 향한 기대와 환멸의 사이클도 끝난다. 세태에 민감한 영화·드라마에선 이미 검사물의 퇴조가 뚜렷하다. 검찰 출입할 때 요직에 있는 검사들이 ‘요즘 검사들은 평범한 직장인 같다’고 개탄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검사의 기개와 결기를 강조하는 그 말 속에는 검찰의 위상과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검사들이 결국 검찰을 망쳤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선의건, 악의건 검찰의 특권적 인식이 검찰을 망가뜨린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이제 필요한 것은 법무부 외청 공무원의 합당한 지위를 검사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며, 시민의 평균적 덕성과 생활감각을 갖고 법률가의 양심에 따라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직장인 검사’들인지 모른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영웅이 없는 시대는 불행하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시대는 더욱 불행하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을 두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데, 이 시대적 불행을 그만 끝내자는 게 검찰개혁 취지일 것이다. 그리고 나라면 브레히트의 저 말 뒤에 이렇게 첨언하겠다. “평범한 영웅이 많은 시대는 덜 불행하다.” 내란을 막아낸 익명의 시민들, 내란에 태업한 다수 군인들이 그걸 보여준다. 검찰의 황혼기에 문 검사의 양심고백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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