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들 사이에서 ‘영유아 건강검진’ 예약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유아 건강검진은 국가가 정한 무료 필수 검진이다. 수요에 비해 검진을 받을 기회가 제한적이다 보니 ‘예약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영유아는 생후 14일부터 만 6세 미만까지 발달 단계를 기준으로 총 8차례에 걸쳐 검진을 받아야 한다. 영유아 건강검진은 비만이나 영양 결핍, 자폐, 뇌성마비, 사시 등 주요 성장 및 발달 이상을 조기에 발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입소할 때 해당 검진 결과 통보서를 제출하는 게 의무화 돼 있다.
생후 33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33세 A씨는 영유아 건강검진 예약을 검진일로부터 2달 전에 시도해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A씨는 “유명한 곳들은 예약 전쟁이 맞다”며 “영유아 검진은 병원 입장에서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 대부분 성의 있게 봐주지 않는다. 그래서 잘 봐주기로 유명한 병원에 부모들이 다 몰린다”고 말했다.
문제는 수요는 늘어났지만 검진을 하는 병의원은 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영유아 검진 지정 의료 기관은 2020년 4121곳에서 지난해 3873곳으로 6% 감소했다. 같은 기간 소아청소년과 의원도 2212곳에서 2181곳으로 줄었다.
검진이 가능한 날짜와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예약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생후 10개월 된 아이를 키우는 35세 B씨는 “소아과들이 영유아검진 예약을 늘 받아주는 게 아니라 지정된 날짜, 시간에만 검진을 본다”며 “내가 가는 곳도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에만 검진을 해 줘서 상대적으로 예약이 더 힘들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일선 병의원에서는 “검진 환자를 더 받으려면 일반 진료를 줄여야 한다”며 난색을 보인다. 특히 검진 1건당 병의원이 받는 수가가 3만~4만원대 수준으로 낮다는 점이 기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검진 수가를 약 30% 인상하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진료할 경우 환자 연령에 따라 진찰료를 3500~7000원 더 받을 수 있게 했지만, 고비용 검사 항목이 포함되지 않아 여전히 수가가 낮다는 지적이 많다.
한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지난해 10월 18부터 24일까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전임의·전문의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해 11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0%(복수 응답)가 소아청소년과 충원율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로 ‘낮은 의료 수가’를 꼽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2015년 100%였지만 올해는 2.7%까지 급감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