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여든여섯의 이칠배 할아버지는 ‘집밥 해먹는 남자’다. 전북 완주군 비봉면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운영하는 반찬교실을 3년째 다니며 요리실력을 갈고 닦아서다. 반찬교실에서 만난 이 할아버지는 “기본 양념 만드는 법을 알고 나니 반찬하기가 수월하다”면서 “국·찌개는 물론 나물도 다 무쳐먹는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급속한 고령화로 노인 1인가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남성 홀몸 어르신에 대한 맞춤형 복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1인가구수는 2019년 153만2847명에서 2023년 213만8107명으로 5년 만에 39%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남성 홀몸 어르신은 41만9300명에서 66만3187명으로 58%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노인 1인가구 중에서도 ‘남성’은 식생활 측면에서 더욱 취약하다고 지적한다. 노인 1인가구가 겪는 가장 큰 문제가 ‘영양 불균형’인데 남성 홀몸 어르신은 대부분 요리에 익숙지 않은 세대라서다. 삼시세끼를 다 챙겨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주로 반찬을 자녀 등 외부에서 조달하거나 공동급식·외식을 통해 식사를 해결한다. 특히 농촌은 도시에 비해 끼니를 해결할 식당이나 반찬가게가 부족하다보니 사정이 더욱 열악하다.
임영숙 장안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우리 전통 식문화는 주식인 ‘밥’ 외에 ‘반찬’이 꼭 필요한데 이 식문화에 가장 익숙한 어르신 세대의 남성들은 사회적 분위기로 요리를 접해보지 않은 분이 대부분”이라면서 “자연히 혼자되셨을 때 일상생활 자립성이 확연히 떨어지고 영양 불균형 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여성가족부의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서도 1인가구의 어려움을 묻는 문항에 70대 이상의 42.9%, 남성의 53%가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나세연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고령화대응부장은 “노인의 영양섭취 불량은 의료비 증가,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건강·영양 문제의 악순환이 될 우려가 높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그러다보니 몇몇 지방자치단체나 사회복지단체들이 나서서 할아버지 요리교육에 나서고 있다. 어르신들이 직접 요리를 배우며 자립성을 키우고 동년배를 만나 정서적 유대감도 쌓을 수 있어서다.
실제로 24일 비봉면 행정복지센터에서 열린 할아버지 반찬교실에서 이같은 효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70∼80대 할아버지 10여명은 세찬 빗줄기를 뚫고 반찬교실에 참석했다. 2022년부터 한두달에 한번씩 열리는데 대부분 2∼3년차 수강생일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날 배운 반찬은 멸치볶음·깻잎김치·양파장아찌 총 3가지다. 귀가 어두우신 분부터 다리가 불편해 서서 요리하기 힘든 어르신까지 각양각색이라 지사협 봉사자들이 일대일로 실습을 돕는다. 다소 어설픈 손놀림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3가지 요리를 끝까지 다 만들어내는 열정만큼은 모두 컸다.

이동권 할아버지(84)는 “10년 넘게 며느리가 음식을 가져다줬는데 고마우면서도 항상 미안했다”면서 “지난해부터 요리를 배워 내가 만들어 간 반찬을 며느리에게 보여주고, 집에서 한두가지씩 해먹기도 하니 이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수업 때 만든 반찬은 모두 진공포장해 가져간다. 넉넉히 만들기 때문에 주변 홀몸 어르신과 나눠먹는 어르신도 있다. 제법 요리에 능숙해진 수강생은 레시피를 변형해 깻잎김치에 간장을 빼고 만드는 법도 알아갔다.
심미정 비봉면장은 “교육 전 5점 만점으로 식생활 자립도 평가를 했을 때 평균 3.7점이었는데 교육 후 4.5점으로 향상됐다”면서 “반찬교실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드리는 복지 제도”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요리수업 확대를 위해선 수강생 인식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지자체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수강생 모집이 가장 큰 난관이라는 것이다.
이채미 전북 부안실버복지관 영양사는 “2021년부터 남성 홀몸 어르신들에게 요리를 가르쳐드리는데 모두 처음엔 거부감이 크셨다”면서 “일단 한번 참여하고 나면 만족도가 높아 계속 나오시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임 교수도 “지자체에서 이벤트식으로라도 고령남성들이 요리를 접할 수 있는 체험 기회부터 늘려줘야 한다”면서 “더 나아가 지속성 있게 프로그램이 운영된다면 여성에 비해 사교활동이 적은 남성 고령자들의 친목 도모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완주·부안=윤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