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의·정갈등 국면에서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간 이식 수술 건수가 대폭 감소했다는 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의료계에선 전문 의료진 부족과 같은 돌발적인 사태의 여파를 완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한간이식학회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간질환 치료를 위한 간 이식 수술의 현황 및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학회는 5일부터 열리는 추계학술대회 ‘LT업데이트 2025’에서 간 이식 관련 최신 연구를 공유하는 한편 현재 국내의 해당 분야 치료 현실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체 간 이식 건수는 1262건으로 전년인 2023년(1501건)보다 15.9% 감소했다. 감소 여파는 특히 지방 병원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양광호 양산부산대병원 외과 교수(학회 균형발전위원장)는 “간 이식 같은 고난도 수술은 외과뿐 아니라 마취통증의학과, 소화기내과, 영상의학과 등의 협업이 필요한데 모든 과에서 다발적으로 사직이 이어지고 병원 경영진도 수술실을 축소 운영할 수밖에 없게 됐다”며 “그 결과 부산·울산·경남 지역 병원 중에는 간 이식 수술이 60% 이상 감소한 병원도 여럿 나올 정도로 인력이 부족해 이런 지방 의료기관에선 뇌사자가 발생해도 간을 적출할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식에 필요한 간 조직의 약 70%는 살아있는 공여(기증)자에게서, 약 30%는 뇌사자에게서 받아 간질환 환자에게 이식한다. 이식받는 환자에게는 수술 전부터 이식 이후의 면역반응·합병증 영향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데다, 공여자로부터 간 조직을 적출해 수술이 가능한 상태로 이송하는 과정까지 모두 전문 의료진이 담당해야 하므로 의료인력 급감에 따른 여파는 더 컸다.
학회는 이런 사정을 고려해 국내에도 미국처럼 ‘지역 간 적출 지원 네트워크’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나마 인력에 여유가 있는 대형병원 의료진이 인력이 부족한 지방의 현장에 파견돼 장기를 적출하고, 동시에 수혜자가 있는 병원에선 다른 의료진이 이식 준비를 마치는 방식이다. 간 기증에 필요한 수술 일정을 조정 가능한 생체 간 이식과 달리 뇌사자 간 이식은 적출할 수 있는 시점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뇌사자가 나온 지역 인근 의료기관에 이식 전문의가 없으면 현재로선 이식 대기 환자가 아무리 많아도 적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광웅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학회 회장)는 “의료 인력이 부족한 지방에선 뇌사자가 발생해 간을 적출하러 가는 동안 공백이 생기는데, 미국처럼 지역별 적출 전담 의료진이 있어도 공백 없이 이송이 가능하다”며 “반면 국내에선 행정적인 여러 절차 때문에 이를 시행하기 어려운 사정이라 보건당국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