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다리던 제비가 돌아왔다. 제비가 돌아와 처마 밑을 드나든다. 새로이 집을 지으려고 재촉하며 날아다니는데, 그것을 보고 있으면 어리숙한 나도 뭔가 이 봄에 미래를 설계하고 건축하려고 애써야 할 것만 같다. 그리고 제비는 내게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참에 고쳐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밭둑에는 꼭 향유를 닮은 보라색 꽃이 지천으로 피었다. 꽃의 이름을 찾아보니 갈퀴나물인 듯하다. 집에 딸린 작은 정원에는 작약이 피어서 마치 부잣집의 정원이 된 것만 같다. 작약의 큰 꽃은 귀티와 부티가 절로 난다. 서두르는 성미가 없어 보이고, 인자한 모양새다. 세 해째 이맘때에 꽃을 피우는데 세상의 사람들이 이 작약을 하나같이 사랑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바람이 지나갈 때면 큰 꽃이 좌우와 상하로 느긋하게 맞춰서 움직인다. 마치 연못 속에서 큰 비단잉어가 움직이는 형세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여유를 배우게 되고 마음에 안정을 얻게 된다.
돌아온 제비와 활짝 핀 작약꽃
봄날의 일을 보며 풀 뽑기 나서
시간도 일상도 하나의 수레

작약이 피는 봄날의 일에 대해 나는 졸시 ‘작약꽃 피면’을 통해 노래했다. 시는 이러하다.
“작약꽃을 기다렸어요/ 나비와 흙과 무결한 공기와 나는// 작약 옆에서/ 기어 돌며 누우며// 관음보살이여/ 성모여/ 부르며// 작약꽃 피면/ 그곳에/ 나의 큰 바다가/ 맑고 부드러운 전심(全心)이// 소금 아끼듯 작약꽃 보면/ 아픈 몸 곧 나을 듯이/ 누군가 만날 의욕도 다시 생겨날 듯이// 모레에/ 어쩌면 그보다 일찍/ 믿음처럼/ 작약꽃 피면”
작은 정원에는 아내가 아침마다 강아지와 산책하면서 어딘가에서 캐온 야생화도 하나둘 피기 시작했다. 아내는 심지어 호미를 들고 강아지와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아내가 캐온 야생화 덕에 작은 정원에는 화사한 색채가 더해지고 있다.
집에 오가며 보는 옆집 정원에는 불두화가 피었고, 한 그루의 귤나무에는 벌써 귤꽃이 꽃망울을 맺었다. 아직은 귤나무가 꽃망울을 맺을 때가 아닌데도 그 나무가 선 곳은 유난히 볕이 잘 드는 곳이라 그런 듯했다. 제비와 화초가 부지런하게 하는 제각각의 일을 가까이에서 보면서 나도 이제 벗어두었던 장화를 다시 신고, 목에 수건을 두르고선 모종을 심고, 풀을 뽑는다. 손이 바빠지는 시간이 되었다.
최근에 고향에 다녀왔다. 고향의 마을도 집집마다 농사일이 바쁘기만 했다. 해마다 어버이날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를 하면서 하루를 쉬었는데, 올해는 어버이날 행사를 한 달 앞당겨서 했다고 했다. 포도 하우스 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아서 한창 바쁜 때를 피해서 미리 했다고 했다. 어머니께서는 어버이날 행사를 삼월에 치르는 동네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즘은 저녁에 동네 어른들이 마을회관에서 함께 식사를 하지 않는지 여쭸더니 그것도 농번기에는 하지 못한다고 하셨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저녁밥을 짓는 순번을 정해서 함께 식사를 했는데 그 일도 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팔순의 어머니께서도 저녁밥을 짓는 차례가 오면 그 일을 하셨는데, 동네 어른들 가운데는 혼자 사시는 분들이 적지 않아서 그렇게 함께 저녁을 먹으면 덜 적적해서 다들 좋아한다고 일러 주셨다. 어머니께서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시는 동안에 잠깐씩 산에서 노루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고향 집에 붙어 있는 푸릇푸릇한 신록의 산에서 아까시나무의 꽃향기가 집안으로 밀려왔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어렸을 적에 나를 데리고 모심기를 하러 다니셨던 옛일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다. 다른 집에서 모심기를 하는 날에 일을 하러 가실 때에 새참을 내게 얻어 먹이려고 예닐곱 살이었던 나를 데리고 가셨다고 했다. 모를 심는 동안 논두렁에 나를 앉혀 놓곤 했는데, 그날은 소나기가 내려서 비를 맞지 않도록 빈 비닐 비료 포대로 급히 나를 폭 덮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비료 포대 속에서 내가 꼼지락거리다 그만 논두렁에서 아래로 굴러 내리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내렸노라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뭉클했다. 뭘 좀 더 거둬서 먹이려고 하셨던 어머니의 그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향 집 마당에 돋은 풀을 반나절 동안 뽑아 놓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떠나오면서 몇 번씩이나 고개를 돌려 봄날의 고향을 바라보았다.
오월의 봄날을 살고 있으니 수레가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둥글고 큼직한 두 바퀴가 구르면서 푸른 수레가 가는 것만 같은데, 그 수레는 자연의 생명 살림과 사람의 일이라고 달리 부를 수 있을 테다. 그래서 수레에는 돌아온 제비와 나의 계획과 작약꽃과 야생화와 고향과 농사일과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을 함께 싣고 가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테다. 그리고 보다 세분하면 정원도 하나의 수레요, 봄 산도 하나의 수레요, 시간도 하나의 수레요, 우리의 일상도 하나의 수레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푸른 수레가 간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