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7년 중일 전쟁 당시, 국민당 정부 수도였던 난징(南京)을 점령한 일본군은 전쟁 포로는 물론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기 시작했다. 인류사의 큰 비극 중 하나로 꼽히는 난징 대학살이다.
일본군의 총칼에 의해 6주 간 무려 30만명(추정)이 목숨을 잃었다. 5일 개봉한 영화 '난징사진관'(신오 감독)은 이를 소재로 한 중국 영화다.
지난 7월말 중국에서 개봉해 한달 만에 40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올 여름 중국 최고 흥행작이 됐다. 누적 관객수는 8500만명. 내년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중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영화는 피비린내 나는 생지옥이 된 난징 도심 한 가운데로 관객을 인도한다. 일본군을 피해 도망가던 우편배달부 수류창(류호연)은 우연히 일본군 종군 사진사 이토 히데오(히라시마 다이치)의 조수로 발탁돼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비어 있는 사진관에서 이토가 찍은 사진 인화 작업을 돕는다.
가족과 함께 지하에 숨은 사진관 사장에게 필름 현상을 배우며 목숨을 부지하던 그는 학살 장면이 담긴 필름을 발견하고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일본군에 협력하는 중국인 통역관의 정부(情婦), 전투 중 부상을 입은 중국 경찰관까지 사진관 지하로 숨어들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영화는 스펙터클한 전투 신이나 노골적인 프로파간다 대신 일본군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비극을 세상에 알리려는 소시민들의 용기와 희생을 부각한다. 이를 통해 영화가 되새기는 건 '기록'의 의미다.
사진관을 영화의 가장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택한 건, 그런 이유에서다. 고증을 바탕으로 재현된 학살 현장은 너무나 끔찍해 눈을 질끈 감고 싶게 만든다. 일본군은 중국군 포로를 즉결 처형하고, 남자들을 총검술 훈련의 대상으로 삼는다. 수많은 여성들이 강간 살해되고, 아이들도 일본군의 총칼을 피하지 못한다.



누가 더 많은 중국인을 참수하는가 경쟁을 벌이고, 시신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일본군의 모습은 이들에게 과연 인간성이란 게 있는가 의심케 한다.
수류창은 살기 위해 사진 인화를 돕기 시작했지만, 자신이 인화하는 사진이 일제의 만행을 증명할 증거라는 걸 깨닫는다. 그리곤 비굴한 생존이 아닌 양심을 택한다. 그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반인륜적 비극을 사진과 기록으로 남겨 외부 세계에 알렸던 외국인 선교사와 기자들의 숭고한 행위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종군 사진사 이토는 수류창을 인간적으로 대하는 척 하지만, 성과에 대한 집착 속에 인간성을 잃고 중국인을 혐오하는 속내를 드러낸다. 영화의 핵심인 두 인물의 대비는 인간성이란 가치 외에도, 사진이란 매체의 의미와 이중성에 대해서도 곱씹게 한다.


이토가 보관하던 필름과 바꿔치기한 평범한 중국인들의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은 평온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소중한 추억과 그들의 비극적인 죽음의 순간이 교차하며 강렬한 대비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우리 역사와도 맞닿는 부분이 있기에 관객의 공감을 자아낸다. 일본군들에게 유린되는 종군 위안부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일본군에 적극 협조하는 부역자들은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광경이다.
"중국이 패해 일본 세상이 되면 우리는 편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중국인 통역관의 모습에선 "몰랐으니까! 해방될 줄 몰랐으니까!"라고 항변하던 염석진(영화 '암살'의 일본군 첩자, 이정재)의 비굴한 얼굴이 겹쳐 보인다.
난징 대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난징 입성 후 비전투원에 대한 살해·약탈 행위가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유력 관료들이 포함된 일본 극우 세력은 학살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사상자 수가 과장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난징 대학살을 부정하는 영화 '난징의 진실'을 만들기도 했다.
"역사를 기억해야 강해진다." 영화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짧은 대사가 관객들 마음 깊숙이 파고드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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