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글로벌 정세는 다시 한번 하늘을 주목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분쟁, 미·중 간 전략적 경쟁 심화는 각국의 국방력 강화와 첨단 항공우주 기술로 이어져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항공기 핵심인 첨단 항공 엔진은 단순한 기계 부품을 넘어 국가 안보와 기술 주권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항공엔진 성능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가 바로 '소재'라는 점에서 소재 기술의 국산화와 첨단화는 국가 생존과 기술 패권의 근간이 된다.
항공엔진은 초고온과 고압, 반복되는 열하중과 기계하중을 견뎌야 하는 고난도 기술 집약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초내열합금(superalloy), 세라믹 복합재료(CMC), 고온 내산화 코팅 등 고성능 소재 기술이다. 이들 소재는 항공엔진 효율성과 성능을 좌우하며 연료 절감과 탄소 배출 저감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소재는 개발 난도와 생산 기술의 장벽이 매우 높다. 현재 세계 시장은 소수 선진국과 대형 항공사가 기술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여전히 핵심 소재 대다수를 해외에 의존한다.
이는 단순한 부품 조립의 구조적 한계로 작용하며 우리나라가 항공강국으로 실제적 도약을 위해서는 '소재 자립'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첨단항공엔진 핵심기술 개발사업' 역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전략적 대응이며 그 근간에는 소재 기술 확보가 핵심적 요소다.
첨단 소재 개발은 장기적인 시간과 자원, 반복적인 시행착오를 요구하는 고난도 분야로서 공공 주도의 중장기적 투자와 산·학·연 간 유기적인 협력이 필수다. 또 첨단 항공엔진 소재의 기술 신뢰성과 실제 적용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실증 연구의 체계적 수행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이론적 성능이 우수한 소재라 할지라도 항공기 엔진과 같은 극한 운용 환경에서의 내구성, 피로성, 열화 거동 등에 대한 실증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기술 자립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증 연구는 기술의 완성도를 높일 뿐만 아니라 산업체가 상용화를 추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설계 지침과 인증 기반을 제공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재료연구원은 2028년까지 '첨단소재 실증연구단지'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 단지는 초고온 소재 평가센터를 중심으로 고온 피로시험, 열충격 시험, 산화·손상 평가 등 항공엔진 운용 환경에 따르는 실증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해외 기관에 의존하던 핵심 소재의 시험·인증을 국내에서 수행함으로써 기술 자립과 상용화를 가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소재 연구개발 전반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책 기반 및 인공지능(AI) 기술과의 접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기술 표준화, 품질 인증 체계 구축 등 실증 데이터를 반영한 설계 지침 마련이 중요하며 AI를 활용한 소재 설계, 슈퍼컴퓨팅 기반 물성 예측 시뮬레이션 기술, 자율 실험 시스템과 같은 신기술과의 접목으로 연구개발(R&D) 효율성 극대화가 기대된다.
항공엔진 소재는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군수, 우주, 원자력 등 전략 산업과 직결되는 국가 핵심 자산이다. 공급망 교란이나 수입 통제로 인해 소재 접근이 제한될 경우 전체 산업 생태계가 타격을 입는다.
이에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은 항공엔진 소재를 국가 전략기술로 명시하거나, 사실상 전략자산으로 분류해 장기적인 기술 보호와 자립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항공엔진 소재를 명확한 전략기술로 지정하고 기술 유출 방지, 투자 우선순위 부여 및 제도적 보호장치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인재 양성 또한 매우 중요한 축이다. 항공엔진 소재는 기계, 재료, 화학, 전산 등 학제적 전문 역량이 요구되는 분야로 융합형 고급 인력 육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산·학·연 연계를 통해 실전 중심 교육과 실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설계 및 평가 교육을 체계화해야 하며 청년 과학기술인을 위한 장기적인 커리어 트랙도 구축해야 한다.
항공엔진 소재 기술은 항공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발전용 가스터빈, 수소터빈, 초고온 에너지 시스템 등 친환경 산업 전반으로 기술 확장이 가능하며 방산, 자동차, 전자 등 여러 산업 분야와 융합해 국가 산업 전체의 고도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
따라서 항공엔진 소재에 대한 전략적 투자는 단기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 산업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 열쇠임을 인식해야만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진정한 항공우주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소재 기술에 주목하고 소재 기술에서부터 시작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한 산업 경쟁력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미래 생존을 위한 필연적인 전략이다. 공공과 민간, 학계가 힘을 모아 '대한민국형 항공엔진 소재 생태계'를 조성하고 중장기적 투자, 실증 기반 확보, 인재 양성, 글로벌 협력, 제도 기반 정비 등 전방위 전략을 병행해야 할 때다.
소재는 단단하지만 그 발전은 유연하고 창의적인 시도에서 비롯된다. 이제 우리는 하늘을 향한 국가의 꿈을 소재라는 기반 위에 보다 단단히 세워야 한다.
최철진 한국재료연구원 원장
〈필자〉 최철진 원장은 1961년생으로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재료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한국재료연구원에 입사해 나노분말재료그룹장, 나노기능분말연구그룹장, 분말·세라믹연구본부장 등을 수행했다. 2024년 한국재료연구원 제7대 원장에 취임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심의)회의 기계·소재 전문분과 위원장, 한국과학기술총연합회 이사, 대한금속재료학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2024년 과학기술 훈장, 2016년 국무총리 표창, 2014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2010년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