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짜 일’을 멈추고 ‘진짜 일’에 집중합시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취임사에서 직원들에게 당부한 말이다. ‘레드 테이프(red tape)’라고 불리는 관료사회 특유의 번거롭고 불합리한 형식주의를 버리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자는 내용이다. 기획재정부 관료가 아닌 기업 경영인 면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내세운 ‘진짜 성장’에 착안해 ‘진짜 일’을 강조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김 장관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취임식을 열고 “우리가 가짜 일을 하느라 소중한 자원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은 지 자문해보자”고 말했다. 공무원 사회 특유의 과잉 행정을 문제 삼은 것이다. 김 장관은 구체적으로 “보고를 위한 보고, 보고서 치장하기, 윗사람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 오탈자 하나에 다시 프린트하는 일, 이러한 것들은 우리 국민과 산업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열거했다.
이어 김 장관은 “누군가의 사진 한 장을 위해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을 현장 방문을 준비하고 격에 맞는 회사 고위층을 모셔야 하는 괴로움 등은 현장과 우리 직원들 모두에게 자괴감만 키울 뿐”이라며 “작은 것이라도 변화와 진보가 있는 일, 산업 현장에서 체감과 성과가 나타나는 일, 문제 해결과 의사결정에 속도를 붙이는 일과 같은 진짜 일을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고위급 공무원들부터 가짜 일과 진짜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진짜 일에 집중하는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의 ‘진짜 일’ 주문은 총 3000자 분량의 취임사에서 후반부 350자(약 12%)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앞으로 이어질 김 장관의 업무 스타일을 가장 잘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행정고시 36회로 공직에 입문한 김 장관은 기재부 시절만 해도 ‘정책통’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8년 두산으로 이직한 이후 두산 경영연구원 원장 겸 대표이사를 역임하고 2022년부터는 두산에너빌리티 총괄 부사장직을 맡으면서 ‘기업인’으로 변했다. 관료 시절 가지고 있던 실물 경제에 대한 역량에 기업인으로서의 글로벌 시각과 경영 마인드가 장착됐다는 의미다. 이날 김 장관이 취임사에서 ‘진짜 일’을 띄운 데에도 이같은 기업인으로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이 선택한 단어가 ‘진짜’라는 점도 주목해볼만한 대목이다. 앞서 새 정부 국정기획위원회는 이재명 정부의 향후 5년을 그릴 청사진을 ‘대한민국 진짜 성장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공개했다. 총 104페이지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는 ‘진짜’만 64번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에는 진짜 성장의 개념을 가짜 성장과 비교해 풀이하기도 했다. 김 장관이 진짜 일과 가짜 일을 대비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국정기획위가 진짜 성장이라는 구호를 내놓은 이후 관가에서는 ‘진짜’ 열풍이 불고 있다. 대통령실이 장차관·공공기관장 등 고위공직자 국민추천을 받을 때 내건 이름은 ‘진짜 일꾼 찾기 프로젝트’였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기술 주도 성장을 통해 진짜 대한민국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일선 부처에서는 진짜 성장을 실현할 정책을 발굴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동안 공무원들이 보고서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진짜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