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대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노동단체는 지지 후보를 발표하고 정책 연대를 해왔다. 이에 대해 비판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마치 청구서를 내미는 듯한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는 대선 후보의 모습은 대선 이후의 경제 환경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5월 1일 근로자의 날을 맞아 노동정책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그는 당선 즉시 ‘노란봉투법’을 재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윤석열 정부 시절 두 차례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을 다시 꺼내든 것이다. 이 후보는 이날 “기업이 있어야 노동이 있고, 노동이 있어야 기업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을 압박하고 옥죄기만 하는 노동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상황에서 이 말의 진정성이 의문이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와 제3조의 개정을 의미한다. 2014년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와 관련된 불법 파업에 대해 법원이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판결하자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노란 봉투에 4만 7000원의 성금을 담아 보낸 데서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법안의 핵심은 노동 관계에 대한 규제와 조정에 있다. 불법 파업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무한정 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사용자 범위를 원청 기업까지 확대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쟁의행위 범위가 넓어지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파업에 따른 위험이 커진다. 쟁점은 ‘정당한 쟁의행위’의 개념이다.
현행법은 △근로조건 향상 목적 △법적 절차 준수 △비폭력적 수단을 파업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러나 개정안은 모호한 ‘정당성’ 개념을 도입해 장기 점거나 생산 중단에도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기업으로서는 사실상 법적 대응 수단을 박탈 당하는 셈이다. 경제계가 ‘기업의 손발을 묶는 법’ ‘사실상 노조 면책 특권’이라고 반발하는 이유다. 특히 사용자 범위 확대는 대기업이 하청 업체와의 교섭 책임까지 떠안게 만들며 노사 리스크를 가중시킨다.
전문가들은 사용자 범위의 과도한 확대가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래노동법혁신연구회는 노란봉투법이 헌법상 노동자·사용자 간 대등성 원칙을 훼손한다며 위헌 소지를 지적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도 “신중한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적 충격도 무시할 수 없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파업 증가와 근로 손실을 감안할 때 국내총생산(GDP)이 약 10조 원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GDP 성장률이 0.4%포인트 하락하는 수준이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안 없는 일방적인 법안 추진으로 성장률을 희생할 수는 없다.
열악한 하청 노동자와 전체 노동자의 88%를 차지하는 미조직 노동자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강제성과 위헌 소지가 있는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이 해답은 아니다. 쌍용차 불법 파업 사태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노사 관계도 달라졌다. ‘귀족노조’로 불리는 대기업과 금융 노조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노사 관계가 끌려가서는 안 된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노동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 8월 정부는 ‘노동약자 지원과 보호를 위한 법률(노동약자지원법)’을 제안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조치라는 비판 속에 법제화되지는 못했지만 노란봉투법의 대안을 찾는 데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노란봉투법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식의 주장보다는 기존 노동법 체계에서 보호 받지 못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택배기사, 특수 고용직, 플랫폼 종사자, 프리랜서 등의 권익 보호 방안을 우선 찾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념과 사상·신념에 얽매여 분열과 갈등을 반복할 여유도,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란봉투법 등 노동정책에서는 변화가 없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이 이 후보를 불안하게 만드는 이유다. 표를 앞세운 노동계의 청구서가 현실화된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기업과 경제 전반으로 전가된다. 대선 직후 예정된 임금 협상부터가 걱정이다. 이 후보와 민주당은 노란봉투법의 실질적인 손익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