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중앙 정부의 근로감독권을 지방공무원에게도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관심을 가졌던 정책을 사실상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다시 한 번 꺼낸 것이다. 부족한 근로감독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지지만, 현장 혼란은 물론 보호 사각지대 발생 등을 이유로 정부와 경영계,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이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계까지 반대하고 있어 찬반 논란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8일 국회와 민주당 등에 따르면 이 후보는 노동절인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노동 정책을 소개하면서 “지방공무원에게 노동 관련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을 부여하고 부족한 근로감독을 인력을 대폭 증원해 (노동자가) 신속한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노동권 보호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경기도지사 당시 지방공무원의 특사경 권한 부여 또는 중앙 정부의 근로감독권을 지자체와 공유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2대 국회에서는 국회의원으로서 직접 제도화를 추진했다. 이 후보는 지난해 8월 특별시장, 광역시장 등 지자체장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아 지방근로감독관을 두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후보가 해당 정책 추진에 적극적인 이유는 근로감독관 부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노동관계법령 위반을 가려내고 각종 인·허가, 신고사건 처리, 산업안전 예방 등 활동 영역이 넓다. 하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 후보의 법안을 검토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8월 기준 근로감독관은 3035명에 불과하다.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을 모두 점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작년 기준 근로감독 대상인 종사자 1인 이상 사업장이 200만9955곳인 점을 감안하면 근로감독관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전체 사업장 대비 근로감독 사업장 비율도 2020년부터 작년까지 매년 1%대에서 더 늘지 못하고 있다. 근로감독관 부족은 신고 사건 처리, 감독관 업무 과부화로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지자체와 근로감독권을 나누자는 이 후보의 제안에 대해 노사와 지자체, 정부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국제노동기준을 만든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취지에 반한다는 이유 등을 들며 반대해 왔다. ILO협약 제81호인 ‘근로감독 협약’은 우리나라처럼 근로감독 업무를 중앙 정부에서 직접 관장하도록 정했다. 근로감독권이 지방으로 분산되면 근로감독 업무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지역에 따라 권익 보호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의 대안으로 나온 협약이다. 김민석 고용부 차관도 전일 기자들과 현안 간담회를 하면서 “지자체 공무원에게 수사권을 주고 객관성과 공정성을 유지한다는 건 다양한 면을 고민해야 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또 지자체 중에서는 인천시·울산시·경상남도가 이 후보의 법안 검토보고서를 통해 “지자체별로 근로감독이 이뤄지면, 근로자와 사업장에 혼선과 불편을 만들 수 있다”고 법안을 반대했다. 지자체들은 근로감독을 할 전문성과 조직, 예산, 인력을 중앙 정부 수준으로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자체에는 노동 분야 전문성이 낮은 일반행정직 공무원이 많고 이들은 정기적으로 업무를 바꿔야 한다. 지자체장의 정치적 성향이나 지자체의 유력 기업, 단체가 감독권의 중립성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노동계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에서 이 후보를 지지하기로 한 제1노총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1일 이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노동권 보장, 정년 연장 등 7가지 중점 과제와 25개 세부 과제 안에는 근로감독관에 관한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한국노총은 2021년 5월 논평을 통해 “만일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원·하청 업체를 모두 조사해야 하는데 지자체 근로감독관이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제대로 조사할 수 있겠는가”라며 “그리스도 근로감독권을 지방으로 이양했다가 부작용이 생겨 중앙 정부로 감독권을 환원했다”고 현행 근로감독 체계에 손을 들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자체는 단기 교육을 통해 현행 근로감독관의 전문성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라며 “지자체가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을 집행할 수 있다’는 신뢰를 얻을 지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