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비전향장기수 안학섭씨 "이제는 북으로 가고 싶다"

2025-08-06

"숱한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얼마 안 남은 인생, 이제는 동지들 곁에서 보낼 수 있도록 북으로 보내 주세요."

지난 5일 오후 경기도 김포시 민통선 인근 식당.

정부가 송환에 대한 초기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 비전향장기수 안학섭(95)씨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송환 의지를 힘주어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대북·대남 방송 중지, 대북 확성기 철거 등 이전보다 남북긴장이 완화되고 있어 2000년 이후 중단된 비전향장기수의 북한 송환이 25년 만에 성사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씨는 1953년 4월 체포·구금돼 국방경비법(이적죄)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갔다가 199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20대에 들어간 감옥에서 42년 4개월을 보내고 환갑을 넘긴 나이에 나온 것이다.

65세에 감옥에서 벗어났지만, 비전향장기수로서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고향인 인천 강화도에서 살아 보려 했지만, 친인척과 동네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발을 붙이지 못했고, 막노동을 포함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지만,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다.

"고향에 갔더니 동네 사람들이 '빨갱이가 여기 왜 왔냐'며 호통을 치고 해서 고향에서 지낼 수 없었어요."

안씨는 출소 5년 뒤 북으로 떠날 기회가 있었지만 가지 않았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그해 9월 비전향장기수 63명이 판문점을 통해 북으로 송환됐지만, 당시 안씨는 "미군이 한반도를 떠날 때까지 투쟁을 계속하겠다"며 스스로 잔류를 선택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 때 친일파가 득세하는 걸 보고 인민군으로 싸우게 됐는데, 미군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에서 북으로 떠날 순 없었습니다. 동료 장기수 대부분이 돌아갔지만, 저라도 여기 남아서 해야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안씨는 지팡이에 의존해 걸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한 90대 중반의 노인이지만 과거 얘기를 할 땐 여전히 결기를 잃지 않고 또렷하게 말을 이어갔다.

안씨는 평화협정운동본부 고문으로 활동하며 매주 토요일 시국 기도회에 참석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다가 최근에는 건강이 악화해 김포 자택에 주로 머물고 있다.

폐부종으로 중환자실에 1주일 넘게 입원했다가 지난달 말 퇴원하는 그를 두고 의사는 "언제든지 위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백수(白壽)를 얼마 남기지 않은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될까 봐 이제는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소명을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이제는 건강이 안 좋아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만 주는 거 같아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생사를 함께 나눈 동지들 곁에서 잠깐이라도 지내고 싶습니다."

관련 시민사회 단체들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안씨의 북 송환을 촉구하고 있다.

'안학섭 선생 송환 추진단'은 지난달 정부에 안씨의 북 송환을 요구하는 민원을 공식 제출하고 제네바협약에 따라 판문점을 통해 안씨를 송환하라고 촉구했다.

추진단의 공동단장이자 10년 전부터 안씨를 돌보고 있는 김포 민통선평화교회의 이적 목사는 "안씨는 6·25 전쟁이 끝나고 남파된 간첩이 아니라 전쟁 중 붙잡힌 포로인데 42년여 간의 옥살이를 감내해야 했다"며 "인도적 차원에서라도 안씨를 조속히 송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전향장기수의 북 송환은 2000년 1차 송환 이후 25년간 없었다. 안학섭 송환 추진단은 현재 비전향장기수 생존자가 안씨를 포함해 5∼6명인 것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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