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는 술을 마시는 목적이 다르다. 취하려고 마시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려고, 즐거우려고’ 술을 마신다. 요즘 세대는 이야기가 중요해서 스스로 공부를 하고 그걸 과시한다. 나는 어떤 술을 마셔봤다고 자랑한다. 생산자로서는 그게 어렵다. 어떤 술이 한 번 성공했다고 해도 그게 꾸준히 팔리는 건 아니다. 늘 새로워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
프랑스 칼바도스에서 생산되는 전통 증류주 ‘칼바도스(Calvados)’는 사과 발효주를 증류한 술이다. 일종의 브랜디로 사과 증류주를 대표하는 술이다. 그래서 통상 사과 증류주를 이야기할 때 대명사로 사용된다. 마치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되는 포도주인 ‘샴페인(Champagne)’을 스파클링 와인의 대명사로 여기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칼바도스라고 불리는 술이 있다. 바로 ‘추사(秋史)’다. 충남 예산사과와인에서 빚는 ‘추사’는 ‘추사백’과 ‘추사 40’이 유명하다. 특히 오크통에 숙성한 ‘추사 40 오크’가 주당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런 그곳이 지난해부터 새로운 술을 내놓고 있다. ‘추사 50 배치’로 현재 세 번째 배치까지 나왔다. 배치(Batch)는 같은 맛과 품질을 지닌 한정된 수량의 위스키를 의미한다. 일종의 주인장의 선택(마스터스 셀렉트)과 같다.
지난달 27일 예산사과와인에서 만난 정제민 대표는 “늘 새로운 것을, 변화된 것을 내보내야 하는 현재의 취향에 맞춰 나온 제품”이라고 ‘추사 50 배치’에 대해 설명했다.
“‘추사 40’은 프랑스 오크통 STR(Shave·Toast·Re-char, 깎고·굽고·다시 태우기)을 한 번한 오크통을 사용합니다. 와인이 물들어있는 부분을 다 깎은 통이죠. 조직이 안정돼 있고 건조가 잘 돼 있어서 술을 안정적으로 숙성할 수 있습니다. ‘추사 50 배치’ 시리지는 이와 같이 프랑스 오크통에서 1차 숙성을 하고, 2차 숙성을 다르게 합니다. ‘배치1’은 루비 포트(Ruby Porto) 와인을 숙성했던 오크통에, ‘배치2’는 루비 포트와 타우니(Tawny) 포트 오크통을 섞습니다. ‘배치3’는 프랑스 리무쟁 나무를 사용한 시라(Syrah) 와인 오크통을 사용하죠.”

주정강화 와인 중 하나인 포트 와인은 오크통에 숙성하는 방식 등에 따라 여러 종류도 나뉜다. 그중 루비 포트는 양조 후 산화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저장하는 반면, 토니 포트는 산화에 의한 맛의 변화를 일부러 유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와인을 보관했던 오크통에 사과 증류주를 숙성하면 맛 또한 서로 달라진다.
정 대표는 “루비 포트는 김치로 따지면 겉절이와 같고 타우니 포트는 묵은지와 같다”며 “다양한 맛을 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현재 출시된 배치1·2·3 말고도 양조장에는 다양한 오크통에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이미 제품화된 술이라도 숙성을 더욱 진행해서 변화를 주는 방법도 시도하고 있었다.

“작년 10월 22일 바로 포트 오크통에 숙성하고 있는 술도 있어요. 스페인 템프라니요(Tempranillo) 와인이 숙성됐던 오크통이나 주정강화 와인인 셰리(sherry) 와인이 보관됐던 오크통에 숙성 중인 술도 있습니다.”
정 대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걱정도 적지 않았다. 그중 가장 큰 걱정은 ‘기후’였다.
“최근 날이 너무 더워지면서 사과의 당도가 나오지 않아요. 2년 전까지만 해도 사과 품질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급격하게 기후변화가 생기면서 사과 당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발효가 이뤄지려면 어느 정도 당도가 필요한데, 그렇지 않아서 사과에 당분을 추가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아니면 (같은 술을 만들어도 원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가격을 올려야 하거든요.”

또한 최근 급격히 성장하고 있는 중국도 걱정이다.
“중국에서 최근 와인통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요. 우리가 작년에 300~400개 정도 오크통을 수입했는데, 중국의 한 회사가 작년에 4000개를 샀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전과 후 중국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1~2년이 다르게 발전하고 있죠. 와인 산업도 그렇고, 스테인리스 저장고(탱크) 등을 만드는 곳까지 과거와 달리 깔끔해요. 컴퓨터와 로봇 등으로 모두 자동화가 돼 있어요. 미국까지 긴장할 만하게 중국이 성장했습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자신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꿋꿋이 갈 예정이다. 우선 이르면 올해 말에 새로운 술이 나올 수 있다고 귀띔했다. 셰리 와인이 오랫동안 보관됐던 올롤로소(Olorosos) 오크통에 있던 술을 CS(Cask Strength·오크통에 보관되던 원액 그대로의 술)로 출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알코올 도수는 58∼59도.
“웹툰 나노마신 작가와 협업해 술을 1000병 내놨는데 1분만에 완판됐어요. ‘추사 50 배치2’도 1000병 출시했는데 30분만에 완판됐죠. 심지어 최근에는 중고시장에서 가격기 30%더 붙어서 팔리고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술이 잘 팔리면 공급을 늘렸는데, 요즘에 그렇게 하면 식상해져요. 확 타오르고 확 빠져버리죠. 그래서 다양한 술을 내놓는 것입니다.”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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