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에서 찰랑이는 ‘개성’…한정판과 ‘텀꾸’에 빠지다

2025-08-16

캠핑족 또는 등산객들의 손에 들려 있던 다회용 물병, 텀블러가 미국 젠지(Gen Z, 1995~2010년 출생한 세대)들의 스타일을 상징하는 필수품이 됐다.

이들은 다양한 컬러의 텀블러를 사 모으고 각자의 개성대로 꾸민 나만의 텀블러를 들고 다닌다. 텀블러는 어떻게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과 라이프 스타일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이 됐을까?

텀블러 열풍의 출발점에는 2019년 미국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 ‘비스코 걸(VSCO girl)’ 트렌드가 있다. 사진 보정 애플리케이션 VSCO에서 이름을 딴 이 스타일은,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자연스러움과 환경친화적인 감성으로 인기를 모았다. 비스코 걸을 상징하는 아이템 중 하나였던 ‘하이드로 플라스크’ 텀블러는 곧 미국 10대 소비자들에게 ‘힙한’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편안하고 실용적인 비스코 걸의 스타일과 함께, 하이드로 플라스크를 비롯한 다회용 물병은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세련된 이미지를 대표하는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후 미국의 텀블러 시장은 2022년 한 바이럴 영상으로 전환기를 맞게 된다. 이 영상에는 한 여성 운전자가 차량 사고 후 불타버린 차 안에서 유일하게 변함없는 형태로 남아 있는 스탠리 텀블러를 발견하는 장면이 담겼는데, 심지어 텀블러 안 얼음까지 그대로였던 것. 당시 영상은 틱톡에서 1억회 이상 조회되며 화제를 모았고 영상을 본 스탠리 측이 여성에게 직접 새 차를 선물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게 된다. 이후 100년 넘게 등산용 보온병 회사로 인식되던 스탠리 텀블러는 전통적인 캠핑·공구 이미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스타 아이템’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스탠리의 대표 제품인 퀸처 텀블러 품절 행진을 이어갔고 매출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2019년 7300만달러(약 1000억원)였던 스탠리사의 매출은 2023년에는 약 7억5000만달러(약 1조5000억원)로 무려 10배 이상의 놀라운 성과를 기록하게 된다.

눈치 빠른 브랜드들의 전략으로 텀블러의 인기는 가속 페달을 밟는다. 하이드로 플라스크, 스탠리뿐 아니라 예티, 오왈라, 스웰 등 텀블러 브랜드들은 젊은 취향에 맞춘 제품 컬러 다양화, 한정판 텀블러 출시, 스타 협업 마케팅에 열을 올리며 소비자들의 관심과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데 성공한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커다란 텀블러를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이 포착됐고 유명 인플루언서는 물론 디토 소비(유명인을 따라 소비하는 형태)를 추구하는 젊은층들은 텀블러를 따라 구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티커와 키링 등 다양한 굿즈를 적극 활용한 ‘텀꾸’(텀블러 꾸미기)가 놀이처럼 번지며 텀블러 열풍은 더욱더 빠르게 확산하게 된다.

텀블러의 인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미국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여전히 컬러별 출시일에 맞춰 품절과 오픈런 현상이 발생하고, 인기 색상은 중고 마켓 플랫폼에서 웃돈이 붙는 ‘리셀템’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정판 제품의 경우 50달러짜리 텀블러가 최대 800달러에 재판매될 정도다. 올리비아 로드리고, 포스트 말론, 타일라 등 팝스타와의 협업으로 젠지 세대 내 브랜드 위상을 확고히 한 스탠리는 최근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와 협업한 ‘메시 x 스탠리 1913 컬렉션’을 출시하며 스타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제 텀블러 열풍의 동력은 친환경 실천을 넘어서는 스타일 소비, 자기표현, 집단 정체감에 있다고 말한다. 젠지에게 텀블러는 생수병 대용품이 아니라 사소한 행복이자 환경 의식과 심미성 모두를 포기하지 않는 새로운 소비 기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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