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네일…KIA 에이스의 끝없는 도전 “실패가 많은 야구, 그래서 더 아름답다”

2025-05-17

지난해 KBO리그에 데뷔한 제임스 네일(32·KIA)은 한국에서 이것 한 가지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야구를 시작하고 선수로 성장한 미국과의 비교였다.

스포츠경향 창간 20주년을 맞아 지난 13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난 네일은 “열린 마음으로 한국에 왔기 때문에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며 “미국과 비교하지 않고 이곳에 온전히 적응하려고 했다. 이런 자세가 한국에서의 경험을 인생의 특별한 순간 중 하나로 만들었다”고 활짝 웃었다. 네일의 진심을 알아본 이들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KBO리그 2년 차 네일은 동료의 신뢰와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KIA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네일은 데뷔 시즌부터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26경기(149.1이닝)에 등판해 12승5패 평균자책 2.53의 최정상급 성적을 거뒀다. 삼성과 한국시리즈에서도 2경기(10.2이닝) 1승 평균자책 2.53으로 맹활약하며 KIA의 12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네일은 야구를 ‘실패를 많이 하는 스포츠’로 생각한다. 네일의 야구 인생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미국 미주리주 출신인 네일은 연고 팀 세인트루이스의 오랜 팬이던 가족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시절 자연스럽게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대학에서 투수로 기량을 갈고닦아 2015 메이저리그(MLB) 드래프트에서 오클랜드의 지명을 받았다.

그러나 빅리그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네일은 무려 7년 간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22년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고 빅리그에 입성했다. 네일은 “마이너리그 생활이 길어지니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떨어졌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믿으려고 노력했다”며 “누구나 갈망하는 빅리그 데뷔를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팀에서 할 수 있어서 더 특별했다”고 회상했다.

꿈 같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 네일은 2022년 7경기, 2023년 10경기 등판에 그쳤다. MLB에서 2시즌 간 뛰며 17경기 1홀드 평균자책 7.40을 기록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아시아 무대로 눈을 돌린 네일은 큰 고민 없이 한국행을 결정했다. 그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 무대에 도전해보고 싶어하는 선수들이 많다. 돈도 벌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아주 좋은 방식으로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나도 커리어를 다시 시작할 완벽한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2024년, 새로운 도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네일의 의지와 우승을 향한 KIA의 열망이 만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KIA는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를 모두 우승했다. 네일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그토록 중요한 우승을 이뤄본 적이 없다. KIA의 일원이 돼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라며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에게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네일은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서 뛰고 있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는 “KIA와 계약이 결정되고 난 뒤 많은 사람이 ‘KIA 팬들은 정말 열정적이야. 열심히 뛰고 좋은 사람이 되면 널 사랑하게 될거야’라는 말을 해줬다. 정말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다”며 “이곳에서 받은 응원과 지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웠다. 팬들은 이 여정에서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팬들의 응원과 동료들의 지지는 네일이 부상을 딛고 다시 마운드에 다시 설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지난해 8월24일 NC전에서 타구에 얼굴을 맞아 턱 관절이 골절된 네일은 한국시리즈에 맞춰 복귀하겠다고 약속했다. 팬들의 응원이 쏟아졌고, 동료들은 불의의 부상으로 이탈한 네일의 유니폼을 더그아웃에 걸어두며 빠른 회복을 염원했다. 해당 장면을 스포츠경향의 기사로 접했던 네일은 “유니폼이 걸려 있는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거의 울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네일은 올해도 KIA 마운드를 이끄는 선발 투수로 존재감을 떨치고 있다. 올시즌 현재 9경기(53.2이닝)에 선발 등판해 2승1패 평균자책 2.18의 성적을 거뒀다. 다만 KIA는 개막 초반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으로 현재 5강 밖까지 밀려난 상태다.

네일은 “개인적인 목표는 없다. 내가 정해 놓은 루틴을 지키면서 한 경기 한 경기 집중해서 임하려고 한다”며 “팀이 최대한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내려오는 게 중요하다. 그게 이어지다 보면 다시 한국시리즈에도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완벽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직전 경기에서는 7점을 내줬다”며 “그래도 팀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리더, 어린 선수들이 본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네일의 어릴 적 꿈은 MLB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야수를 했던 어린 시절에는 가족과 친구가 있는 세인트루이스의 유격수가 되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그의 모든 바람이 이뤄졌다면 KIA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 마운드에 선 네일의 모습은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야구 인생의 경로는 여러 번 바뀌었지만, 네일의 마음가짐은 한결같다.

그는 “야구는 정말 어려운 스포츠라서 무언가를 정해 놓기 힘들다. 당장 내일 다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할 뿐”이라며 “선수로서, 또 한 사람으로서 매일 무언가를 배우고 있다.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 안에서 배워야 할 것들이 생긴다”고 말했다.

네일은 이따금 이 도전의 끝을 생각한다. 그는“요즘 ‘모든 게 끝났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나는 정말 만족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한다”며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가능한 한 오래 야구를 하고 싶다. 여전히 이곳에서 경쟁하는 것을 즐기고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야구는 실패가 정말 많은 스포츠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 다시 꽃피운 네일의 야구 인생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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