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가 돼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25-05-31

[주간경향] 필자를 포함한 경향신문 전·현직 기자 4명은 지난 5월 27일부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벗었다. 검찰 압수수색을 당하며 피의자가 된 지 1년 7개월 만이다. 직접 당해보니 검찰 수사는 기사를 쓰면서 더듬더듬 가늠했던 수사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생각보다 예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뭉툭하고 막무가내라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에 초대된 것 같았다. 기사 작성자를 잘못 기재한 영장이 발부돼 압수수색의 근거가 됐고, 검사는 때론 거짓말을 하고 때론 “진실을 같이 밝혀보자”며 종잡을 수 없는 조사를 했다. 국가기관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초현실적인 일들이 한동안 벌어졌다.

이 수기 형태의 기사는 지난 1년 7개월 피의자로 머물던 때의 기록이다. 기자 개인의 불행이었다면 일기장에 쓰고 말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국가 최고 권력자가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 했던 숱한 시도 중 하나였다. 검찰이라는 수사기관이 법을 마음대로 해석하며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수사권을 휘두른 사례이기도 했다. 수사가 무엇인지 피상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구조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2023년 10월 26일 아침,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집에 들이닥쳤다. 잠결에 맞이한 이들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검사와 수사관. 20대 대선을 6개월 앞둔 2021년 10월, 경향신문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대검 중수부 재직 시절 부산저축은행 사건을 부실 수사한 의혹이 있다는 연속 보도를 했다. 대선후보 검증의 일환이었고, 성실한 취재에 바탕을 둔 합리적 의혹 제기였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검찰은 이 기사가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을 뿐 아니라 “대의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하는 중대 범죄”였다고 규정했다. 집에 들이닥친 검찰이 영장을 제시하고 읽어 보라고 했는데, 눈은 읽어도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휴대전화 압수를 시작으로 절차가 빠르게 진행됐다.

“이미 다 봤어요. 그냥 적어 내세요.”

거실 탁자에 앉아 있던 나를 뒤에서 지켜보던 젊은 수사관이 말했다. 휴대전화를 언제부터 썼는지 물어보기에 잠시 허락을 얻어 아이폰 잠금을 풀고 확인을 했는데, 그때 비밀번호를 훔쳐봤다는 얘기였다. 그러니 번거롭게 할 것 없이 비밀번호를 제출하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수사하는구나.’ 조금은 안다고 생각했던 공권력의 얼굴을 다시 봤다.

순순히 비밀번호를 알려줄 마음도 한편에 있었다. 잘못한 게 없었고, 뭔가 숨기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한편으로는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등 검찰 고위직들의 수사 대응법이 떠올랐다. 평생 수사를 업으로 삼고도 수사 대상이 돼서는 한사코 비밀번호를 건네지 않았던 이들. 그걸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것은 비밀번호가 검찰에게 넘어가면 어떻게든 불리해진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다 봤다”는 수사관의 말은 더 이상의 고민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른 아침의 압수수색은 여러 문제를 초래했다. 예고 없이 벌어지는 일인데 급히 변호사를 구할 수도, 겨우 구한 변호사가 집까지 한걸음에 당도하기도 어려웠다. 당시 갓 돌 지난 아이를 키우며 육아휴직 중이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기저귀부터 갈고 밥을 만들어 먹여야 했다. 당혹감에 심란함이 뒤섞였다. 그저 빨리 압수수색을 받고 이들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압수수색은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통째로 가져갈 수도 있지만, 기기에 저장된 정보를 ‘수사기관이 휴대한 저장매체에 복사하는 방식으로 압수’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런 방식을 ‘이미징’이라 하는데, 일일이 정보를 선별해 복사하자면 검찰 직원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만 길어질 터였다. 도저히 택할 수 없었고, 애초 검찰은 염두에도 안 뒀다는 듯 휴대해야 할 저장매체를 가져오지도 않았다. “아침에 문을 열었으려나”라며 집 주변에 대용량 저장매체를 파는 곳을 알아보는 수사관의 모습을 보며 속이 타들어 갔다.

시간 싸움에서 주도권을 쥔 검찰은 사용 시점을 확인하고도 2017년 이전에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가져갔다. 문제가 된 기사를 작성한 2021년과는 시차가 커 명예훼손 혐의와는 무관한 휴대전화였는데도 그랬다. 영장이 지정한 범위를 벗어나 압수한 것이다. 검찰은 위법이라기엔 소소하고, 그렇다고 정상이라고 절대 말할 수는 없는 방식으로 수사를 했다.

검찰이 청구해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도 자잘한 사실관계들이 잘못 적혀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모이면 따로 일한 사람들이 ‘공모’한 것처럼 보이는 마법이 일어난다. 예컨대 내가 관여하지 않은 기사를 내가 쓴 듯 기재하거나, 당시 회사 동료 A가 관여하지 않은 기사를 A가 쓴 것처럼 서술하는 식이다. 나와 A는 당시 각각 다른 팀에서 일했고, 지시나 업무 연락을 나누는 관계에 있지 않았다. 2021년 한 해를 통틀어도 업무 관련 연락을 나눈 건 한 차례가 전부였고, 그마저도 검찰이 문제 삼은 기사와는 관련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영장은 두 사람이 공모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작성됐다. 검찰 수사의 핵심은 어쩌면 이런 소소한 것들에 감춰져 있는 듯했다.

2023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총 세 차례 조사를 받았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해 밤 9시에 조사 끝내고 그때부터 조서를 읽는 꽉 채우는 조사였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검찰이라는 출입처를 딱 3년 담당했다. 명예훼손 사건을 반부패수사부(옛 특수부) 중심으로 특별수사팀을 꾸려 이렇게까지 조사한다는 게 상식적이지 않았다. ‘검찰은 불러 조지고, 법원은 미뤄 조지고’라는 말을 실감했다. 하교 시간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검사실에서 천장만 바라봤다. 시간이 갈수록 질문과 질문 사이의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았다. 빨리 물어보고 일찍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세 번의 조사에서 검찰이 가장 궁금해했던 것은 결국은 취재원이었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시킨 의혹을 최초 유포한 배후. 언론을 상대로 한 명예훼손 수사의 외피를 쓴, 배후 찾기 수사였다. 검찰은 여러 가능성을 의심했는데 그중에서도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들은 것이 아니냐”고 집중적으로 물었다. 검찰은 대장동 수사로 궁지에 몰린 김만배씨가 대검 중수부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해 프레임을 전환하려 했다고 봤다. 그런데 이 작업을 본인이 나서지 않고 조우형씨를 통해서 했다는 게 검찰 시각이다. 조씨는 2009년부터 대장동 일당에 대출을 알선한 브로커로, 2011년 중수부 부실 수사 의혹의 중심 인물이다. 김씨가 경향신문 기사의 배후라는 검찰의 의심은 취재 과정을 돌아볼 때 사리에 맞지 않는다. 조씨는 자체 취재 과정에서 어렵사리 만났을 뿐이고, 김씨는 수차례 취재 시도에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취재원 보호는 언론의 금과옥조인데도, 검찰은 언론을 상대로 수사하는 것도 언론의 직업윤리를 어기는 것도 쉽게 생각하는 듯했다. 검사는 때로는 으르고, 때로는 달랬다. 두 번째 조사에서는 첫 번째 조사처럼 딱딱하게 가지 말자며 조서를 안 쓰는 면담을 했다. 검사는 왼 주먹을 움켜쥐면서 “진실을 같이 밝혀봅시다”라고 하기도 했고, 수사 상황을 브리핑해 주기도 했다. 배후 찾기에 협조해 달라는 취지였다. 취재원 보호는 비단 언론을 위한 원칙이 아니라 권력이 견제되는 민주주의 사회를 위한 원칙이다. “대의민주주의 사회의 본질적 기능을 훼손한 중대 범죄”를 엄단하기 위해 수사를 시작한 것치고는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은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다.

검사는 대장동 대출 브로커 조우형씨가 애초 대검 중수부의 수사 대상이 아니었고, 따라서 부실 수사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해 거짓말도 했다. 검사는 “지금도 기사가 허위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며 “(중수부 부산저축은행 수사 때) SPC(특수목적법인) 관계자는 한 명도 처벌받지 않은 것도 아시죠?”라고 물었다. 부산저축은행은 120개의 차명 SPC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조씨는 이중 한곳의 대표였다. 애초 조씨는 수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시 SPC 대표 중 처벌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대자 검사는 황급히 “6월에 5명인가 처벌되긴 했습니다”라고 정정했다. 수사기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무너진 순간이었다.

때로 검사는 자존심 상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제대로 기사를 쓰려면 “당시 중수부의 수사 인력 등을 분석하는 내용을 담았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등의 질문이었다. 취조실에 피의자로 불려가 데스킹(기사 검토·수정)을 받는 일은 2023년에도 일어났다.

아무리 유쾌하게 그려도 블랙코미디로만 치부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권력자의 의중에 따라 수사기관이 움직였고, 예단을 갖고 수사를 하면서 권력에 비판적인 언론을 탄압했다. 첫 번째 검찰 조사에 배석했던 변호인은 조사 직후 사임했다. “소속 로펌에서 (이 사건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기소될 일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며 미안해했다. 대통령의 관심 사건이다 보니, 부나방처럼 뛰어드는 검찰의 뭉툭함도, 법의 테두리를 넘나드는 수사 기법도 두렵게 느껴졌다. 지난해 4월까지 드문드문 날아왔던 출국 금지 연장 통보는 잊을 만하면 사건을 상기시켰다.

당해보니 알게 된 것은 우리 사회가 수사기관에 극도로 유리한 사법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 수사는 법의 통제도, 법원의 통제도 받지 않았다. 명예훼손 사건은 법상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인데도 ‘대검 예규’를 들어 이 수사를 했다. 법 위에 예규다. 압수수색 영장 표지에 적힌 ‘죄명’은 ‘명예훼손’이 아닌 ‘배임수재 등’이었다. 경향신문 기사와는 무관한 혐의였고, 자잘한 오류들이 있는데도 법원에서 문제없이 영장이 발부됐다. 검찰 수사관은 압수된 휴대전화를 통째로 복사해 검찰 디지털수사망(디넷)에 올리면 휴대전화를 돌려주겠다고 하고는, 사본을 디넷에 올린 뒤 검사가 반대한다며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았다. 이런 법은 없다.

그래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수사 책임자인 고형곤 당시 중앙지검 4차장은 2023년 11월 “피고인들이 법정에 다 설 수도 있다. 그러면 (검찰이 수사할 수 있는 관련 있는 범죄인지) 법원에서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수사를 개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수사 주체인 우리가 결정하고 검찰청법에 따라서 하고 있다 말씀드린다”고 했다. 검찰청법 어딜 봐도 명예훼손 수사를 검찰이 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규정을 무시해서라도 수사 편의를 최대한 확보하는 수사기관은 범죄자를 잡는데 탁월할지 몰라도 사회에는 악영향을 준다. 오직 수사의 실무를 꿰고 있는 사람들만이 수사에 직면했을 때 수사기관의 소소한 탈법을 제지할 수 있을 뿐이다. 피의자가 된 검사들이 그러했듯이, 많은 거물 피의자가 수사 단계에서는 검찰 전관 변호사를 찾듯이. 결국 통제받지 않는 수사기관으로 인해 가장 평범한 사람들이 가장 가혹한 공권력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정권이 바뀌면 대통령 심기 경호를 위해 시작된 이 같은 수사가 다시는 벌어지지 않을까. 수사권 대부분이 검찰에서 경찰로 넘어가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까. 두 가정 모두에 대해 회의적이다. 어떤 수사기관이든 끊임없이 정권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유혹을, 법 규정을 살짝 어겨서라도 수사 편의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진정 해야할 검찰개혁은 수사기관을 통제할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어야 한다. 수사 실무를 규율하기에는 공백이 많은 법 규정을 촘촘히 만들고, 법의 통제를 강화하며,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줄여야 한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율 91%에 달하는 법원 역시 수사권 통제의 보루로서 자신들의 역할을 온전히 인지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런 일은 또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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