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의 시인을 처음 만나는 일은 그간 함께한 시인들을 다시금 한 번씩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문학과 문학적인 것. 시와 시적인 것. 미학과 미학적인 것. 우리가 서로 딛어온 영토를 재확인하고 흐릿해진 경계선을 다시 그어봅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우리를 우리에 가두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상기합니다. 그러므로 모범과 안주보다는 비행과 탈주에 더 많은 마음을 들입니다. 높고 튼튼한 담장보다는 활짝 열리는 문을 기대합니다.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에 임한 4인은 이와 같은 태도로 6000편에 이르는 작품을 살폈습니다.
정독과 토론 끝에 심사위원은 총 6인의 작품을 두고 숙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년, 장발장’ 외 4편은 내면과 현실의 간극을 아름다운 낙차로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다만 필요한 진술과 필요하지도 불필요하지도 않은 진술, 그리고 불필요한 진술에 대한 분별이 조금 더 엄격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올해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외 3편은 어떤 삶의 풍경을 선연하게 옮기는 일만으로도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의 결말이 매번 지나치게 닫힌 구조로 끝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앓기잃기’ 외 4편은 활달한 상상력과 이를 받쳐내고 감당해내는 문장이 돋보였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본인의 의도를 다 알아차리지 못할까 싶은 강박 탓인지 큰 의미 없는 중복과 중첩이 눈에 띄었습니다. ‘간절기’ 외 4편은 많은 장점이 잠재된, 하지만 분명한 단점이 드러난 작품이었습니다. 본인이 지닌 개성이 독특한 만큼 이것이 일차적으로 전달되는 언어는 더 정확해야 한다는 고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심사위원 4인은 ‘교환’ 외 4편과 ‘졸업반’ 외 4편을 끝까지 두고 어느 것 하나 선뜻 쥐어 들지 못했습니다.
먼저 ‘교환’ 외 4편은 사회 현실에 대해 넌지시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탄탄한 사유를 쌓아가며 본인만의 세계를 구축해내는 과정도 미덕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다만 시상을 더 펼쳐내야 하는 중요한 지점마다 최근의 시 독자에게 익숙하게 다가갈 낱말을 활용한다는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습니다. 세워진 언어에 기대지 말고 본인만의 언어를 세운다면 더 좋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졸업반’ 외 4편을 202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정합니다.
투고한 5편의 작품 모두 리듬감과 생동감 덕에 읽으면 읽을수록 또 읽고 싶게 만든다는 의견이 있었고, 엄숙함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적 태도가 돋보인다는 의견이 있었고,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시적 긴장을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과감한 진술이 인상적이라는 의견이 있었고, 시의 묘사에 관해 더 깊은 고민을 해보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부디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눈과 함께하시기를. 그리하여 더 멀리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안타깝게 낙선된 분들에게도 아쉬운 마음과 함께 같은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심사위원 박준·이경수·진은영·황인숙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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