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년 동안 복지 수당이나 서비스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복지포털 복지로에 따르면 복지 가짓수가 중앙 행정부처 368개, 지방자치단체 4552개이다. 그동안 선진국에서 부지런히 들여왔다.
그래도 없는 게 있다. 바로 상병(傷病)수당이다. 업무시간 외에 다치거나 병이 나서 일을 못 하게 되면 소득을 보전해주는, 일종의 휴업수당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1969년 상병급여 협약에서 경제활동인구 75% 이상 적용 등의 기준을 제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한국·미국만 없다.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182개 회원국 중 163개국이 도입했다.
하루 최대 6.6만원 소득 보전
우리도 전 정부에서 2022년 7월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새 정부는 2027년 정식 시행을 목표로 잡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도 확대를 약속했다. 정부는 1,2,3단계 시범사업을 하면서 수당액·대상자 등을 요리조리 바꿔보고 있다. 3단계에서는 의사 진단서, 질병 상태 등을 따져 15~64세 취업자에게 최대 150일치까지 직전 소득의 60%를 보장하되 하루 최저 4만8150원, 최고 6만6000원 지급한다.
업무시간 외 상해·질병에 지급
2027년 시행,한국·미국만 없어
이웃 일본은 건보재정 3% 투입
도덕적 해이 방지책 세워야
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회사원 A(42)씨는 지난 5월 계단에서 넘어져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다. 다친 후 7일(무급 대기기간) 안에 병이 나으면 상병수당 대상이 되지 못한다. 8일째부터 수당이 나온다. A씨는 주 1~2회 병원에 다녔고, 통원 치료 15일치의 상병수당 72만여원(하루 4만8150원)을 받았다. 그는 "상병수당이 드라마틱하지는(많지는) 않지만 일을 못 해서 소득이 줄어드는 걸 보완해줘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최소한의 보장을 해준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올 7월까지 1만2991명에게 1인당 30일치, 141만원이 나갔다. 전북 익산시 사립유치원 교사(43)는 올 1월 빙판길에 넘어져 왼쪽 발목이 골절됐다. 수술·통원 치료 받느라 68일 결근했고 상병수당 327만원을 받았다. 60대 공장근로자는 지난해 5월 장기간 기계작업에 무릎·허리·어깨 등에 탈이 나 130일치 상병수당 618만원을 받았다. 전체 수급자 중 50대가 40.3%로 가장 많다. 직장인이 대부분이고 자영업자가 20%이다. 다친 사람이 29.5%로 가장 많다. 근골격계 질환이 25.8%, 암이 21.4%이다.

앞으로 대상자·금액·기간 등을 어떻게 설정할지 벌써 의견이 분분하다. 이웃나라 일본은 어떠할까. 1927년 도입해 100년가량 됐다. 한국 시범사업 모형보다 많이 보장한다. 무급 대기기간은 3일로 짧다. 최대 1년 6개월(한국 약 5개월) 보장한다. 수당은 보수의 3분의 2이고, 하루 상한은 3만1000엔(29만 3180원)이다.
일본 암환자 "수당 덕에 투병"
지난달 25일 도쿄 치요다구의 암 생존자 단체 '캔솔(Cansol)' 나오미 사쿠라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유방암 생존자다. 2004년 암 진단을 받고 수술·항암치료를 받았다. 30일은 연차 휴가를 썼고 6개월치 상병수당을 받았다. 약 부작용이 걱정돼 석 달 추가 인정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오미 대표는 월 25만엔(약 237만원)을 받았는데, 대졸 초임이 그 정도였다.
나오미 대표는 "당시 집이 있었고, 자동차 대출금은 없었다. 아이가 없었다. 그래서 상병수당으로 병원비와 생활비를 아슬아슬하게 댈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그게 없었다면 투병 생활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나오미 대표는 "상병수당은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두를 위한 제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임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일본은 직장인만 지급한다. 자영업자나 아르바이트생에겐 적용하지 않는다. 일부 대기업이 복지 차원에서 유급 병가를 운영하는데, 이게 있는 회사 직원은 이걸 먼저 쓴다. 산재수당이나 실업급여 수급자는 상병수당 대상이 아니다. 일본은 건보 재정을 쓴다. 노부야 마쓰모토 건강보험조합연합회(대기업 건보조합) 정책부참사는 "상병수당은 재정 지출의 3% 선이다. 재정 부담이 미미한 편이다. 의료비 지출 증가보다 부담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상병수당을 위해 따로 건보료를 걷지 않는다. 보험료(9.34~10.4%)에 포함돼 있다. 한국 보험료율(7.09%)보다 꽤 높다.

스즈키 슈이치 국제의료복지대학 교수는 "일본은 장기간 휴직하는 데 대한 미안함을 느끼는 문화가 있어 적극적으로 상병수당을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다. 키미카주 미소노 동경도사회보험노무사회 회장은 "상병수당은 아픈 근로자가 치료에 전념하고 조기에 회복해서 복직하는 걸 전제로 한다"며 "다만 한국은 임금 근로자가 아닌 사람이 많아서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건보로 하면 보험료 추가인상 우려
상병수당 도입의 가장 큰 고민은 재정이다. 일본처럼 건보를 쓰면 보험료 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고, 예산으로 하자니 재정 적자가 걸린다. 어느 쪽으로 하든 1조원 넘게 쓰기 힘들어 보인다. 또 유급 병가를 운영하는 대기업 직원은 상병수당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종업원 300명 이상 사업장의 66%가 유급 병가를 운영한다. 이들이 건보료 수입의 원천이다. 대기업 근로자들이 "건보 재정 기여도가 우리가 훨씬 높은데 왜 혜택은 못 보냐"고 불만을 제기할 공산이 크다. 자영업자를 포함할지도 관건이다.
실업급여 같은 도덕적 해이가 생기지 않을지도 고민거리다. 일본은 허위 지출이 1% 이내에 불과하다고 판단한다. 다만 전국건강보험협회(중소기업 건보조합) 기획부 주임은 "정신질환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부정 수급 의심 사례가 많이 늘었다"며 "한국은 정신질환자의 수급 기간을 짧게 하되 취업 훈련을 넣는 게 어떠냐"고 조언했다. 다양한 변수를 종합한 한국형 상병수당이라는 복지의 마지막 퍼즐 맞추기가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