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금융감독원에서는 가물치가 화제다. 이찬진 신임 금감원장이 임원회의서 “금감원이 가물치 같은 조직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뒤 그가 그리는 청사진이 어떤 모습일지 각 부서가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가물치는 민물 최상위 포식자다. 개구리든 물고기든 눈에 보이면 물어 뜯을 정도로 공격성이 강해 ‘폭군’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다. 최근 만난 증권사 임원은 이 원장의 가물치 비유가 단순히 역동적인 조직을 만들자는 이야기만으로는 들리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참여연대 등 ‘투쟁’을 전문으로 하는 재야 단체에서 오랜 경력을 쌓고 살아 있는 권력의 최측근인 이 원장이 ‘금융권의 가물치’가 될까 봐 섬뜩하다는 반응이다.
각 금융 업권은 이 원장이 금융권에 대해 선한 금융소비자와 악한 금융사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갖고 있지는 않을지를 가장 우려하고 있다. 이 원장이 취임 직후 금감원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이들을 직접 만나려다 주변의 만류로 그만뒀다는 이야기는 이미 유명하다.
당장 금융 당국이 MBK파트너스에 대한 대대적 현장 조사에 착수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다. 금감원은 올 4월 MBK와 홈플러스 조사를 마치고 경영진을 검찰에 통보했는데 이번에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과정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겠다며 4개월 만에 추가 조사에 나섰다. 조사에는 이 원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고 한다.
지난해 7월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을 맡았던 이 원장은 기자회견에서 MBK를 ‘악덕 투기자본’으로 지목했다. 그는 MBK와 같은 사모펀드(PEF) 운용사를 “기업 인수합병(M&A) 후 구조조정을 해 되파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업체”라고 규정하고 이 같은 곳에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일각에서 이번 조사에 대해 이미 결론을 내린 조사라는 의구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다행히 이 원장은 자신에게 붙은 이 같은 꼬리표를 아주 잘 인지하고 있다고 한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이 원장이 ‘제가 시민운동가처럼 보일 수 있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니 놀라지 마시라’고 했다”고 전했다. 앞으로 약 3주에 걸쳐 진행될 업권별 간담회가 중요하다. 직원들에게 격의 없이 소통할 것을 강조한 것처럼 금융권의 목소리를 허심탄회하게 들어야 한다. 3년 후 이 원장이 가물치 같았다는 평가를 받지 않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