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쟁 ‘수단 내전’
2023년 정부군·반군 무력 충돌로 촉발
UAE는 반군, 이란은 정부군 지원 속
미국·사우디·이집트까지 개입 장기화
반군 비아랍계 학살로 최소 1만명 사상
수단인들 강간·폭행 등 각종 범죄 노출
서구 反이민 확산… 장밋빛 정착 먼 길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 수단 내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가자전쟁과 달리 수단 내전은 국제사회로부터 철저히 잊혔다. 군부 쿠데타로 시작된 수단 내전은 학살과 성범죄 등 각종 전쟁범죄로 수단을 ‘지옥도’로 변하게 했다.
수단 내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국제사회가 외면한 틈 사이로 수단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수많은 국가들이 내전에 개입해 장기전으로 흐르고 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1200만명의 수단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난민이 돼 다른 나라로 흘러갔지만, 전 세계적인 ‘반(反)이민주의’와 맞물려 외면받고 있다.
◆수단 내전의 시작과 ‘학살 범죄’
20일 국제 비영리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ICG)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수단 내전은 2023년 4월 수단정부군(SAF)과 반군인 신속지원군(RSF) 간 무력충돌로 시작됐다.
수단에서 1993년부터 독재자로 군림했던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이 2019년 4월 남수단 분리독립 문제와 경제난 등으로 군부로부터 축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알바시르 전 대통령 축출 이후 수단 내에선 민주화 물결이 일어났지만, 군부는 2021년 10월 두 번째 쿠데타로 이를 진압했다.
수단 군부 쿠데타를 주도했던 세력은 압델파타흐 알부르한 과도주권위원회 위원장이 이끄는 SAF와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 장군이 수장으로 있는 RSF로 나뉘어 있었는데, 이들이 권력을 두고 2023년에 무력 충돌하면서 내전으로 이어졌다.


RSF는 같은 해 6월 다르푸르 지역에서 일부 민족과 비아랍계 부족을 상대로 학살을 자행했다. 이 학살로 최소 3000명이 죽고, 6000명 이상이 다쳤으며, 수십만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또한 당시 학살은 모든 통신이 차단된 상태에서 이뤄지면서 탈출에 성공한 피란민들의 입을 통해서만 알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학살이 벌어졌던 다르푸르 지역은 2003년 알바시르 전 대통령이 ‘인종청소(제노사이드)’ 명목으로 30만명을 학살한 곳으로, 20년 만에 두 번째 학살이 벌어진 셈이다.
미국 예일대 인도주의연구소는 “다르푸르 지역에서 벌어진 학살 수준은 과거 50만명에서 80만명이 사망한 ‘르완다 대학살’ 초기와 맞먹는다”며 “다르푸르 지역의 학살은 사실상의 제노사이드”라고 경고했다.

◆1000일째 이어지는 원인은
수단 내전이 1000일 이상 장기화한 원인으로 ICG는 크게 △군사적 ‘결정적 승리’가 불가능한 구조 △외세의 개입 △국제사회의 외면 세 가지를 꼽았다.
수단 내전 발발 이후 정부군인 SAF도, 반군 RSF도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수단 내전은 어느 한쪽이 승리하기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SAF는 수단 동부와 북부, 일부 도시를 장악했고, RSF는 다르푸르 지역과 서부, 중부를 장악해 각각 ‘자신들의 국가’로 굳혀가는 중이다.
수단의 지정학적 위치를 둘러싸고 이웃 아프리카 국가와 걸프 국가들이 개입해 한쪽을 지원하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수단은 이집트와 차드, 에티오피아, 리비아 등과 접해 있는 것과 동시에 이집트 수에즈운하로 이어지는 요충지 홍해 항로와도 맞닿아 있다.
이 지정학적인 이유로 수단 내 영향력을 키우려는 이집트가 정부군인 SAF를 지원하고 사우디아비아, 이란, 튀르키예, 미국 등이 이를 지지하고 있다. 반면 다른 이웃국가인 차드,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 등과 걸프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는 반군 RSF 편에 서 있다. 게다가 아프리카 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러시아 민간 용병대 바그너그룹도 RSF를 지원하는 상황이다. 외부 세력이 각 진영에 군수 및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면서 힘의 균형이 깨지지 않는 ‘균형 상태’를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국제사회가 러·우 전쟁이나 가자전쟁과 달리 수단 내전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3월 유엔은 수단 내전을 두고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 중 하나”라고 말하며 인도주의 재난을 공식화하고, 같은 해 6월에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이 RSF에 대한 제재를 추가했지만 직접적인 압박 없이 소극적인 대응에 머물렀다는 평이다. 이에 가디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전쟁이 수단 내전이지만, 정작 관심은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취재진의 접근이 어려워 참상을 알아내기 힘든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RSF는 다르푸르 지역의 통신망을 차단해 사실상 ‘블랙아웃’ 상태를 만들었고, 국제 언론인이나 인권 감시단의 입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1200만명 난민 발생
오랜 내전으로 수단인들은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수단 전역 치안이 사실상 붕괴하면서 민간인 살해와 강간 등 범죄에 시달리고 있다. 1900만명의 학령기 아동 중 90% 이상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유엔아동기구(UNICEF)는 밝혔다.
약 1200만명의 사람들은 집을 잃고 떠돌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일각에서는 1000만명의 강제이주민이 발생한 시리아 내전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수단 내전으로 집을 잃은(강제이주민) 사람들은 이달 기준 1178만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726만명은 수단에서 머무르는 실향민(IDPs)으로 나타났고, 452만명은 다른 나라로 유입된 난민이다. 수단 난민들은 주로 이웃 국가인 이집트(150만명), 차드(77만명), 남수단(35만명), 리비아(26만명) 등으로 이동했다.
수단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난민들은 범죄와 건강 위협에 노출되는 일이 빈번하다. 당장 수단 내전에서 발생한 난민 중 약 66%를 차지하는 여성들이 성범죄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UNHCR은 분석했다. 일례로 지난 6월에는 리비아 당국과 민병대가 조직적으로 수단 난민을 구금하고 폭행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경제 사정이 조금 나은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로 향하는 이들도 많다. UNHCR은 수단 난민 중 약 10%가 북아프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거나 이주를 희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유럽 국가로 유입된 수단 난민은 전년보다 134% 급증했다. 북아프리카와 가까운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경우 올해에만 각각 1만명 이상의 수단 난민이 유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민자에게 비교적 관대한 독일이나, 수단을 식민지배한 역사가 있는 영국도 매년 1만명 이상의 수단 난민이 입국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유럽 국가들에서 난민을 포함한 외국인 이주에 대한 거부감이 늘고 있어 유럽에 온 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민주의를 내세우는 유럽 내 극우정당들이 부상하면서 난민을 사회 불안 요인으로 보는 경향을 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
슈테펜 카일리츠 해나 아렌트 전체주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유럽 주요 보수 정당들이 극우정당의 이민 강경 노선을 수용하면서 난민·이민 통제가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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