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지도는 왜 큰불이 잦았을까....쓰레기의 기억과 망각[BOOK]

2025-12-19

쓰레기 기억상실증

임태훈 지음

역사공간

폐기의 공간사

김이홍 지음

사이트앤페이지

얼마 전 인천시 서구 수도권매립지를 찾았다. 트럭이 산처럼 쌓아 놓고 간 종량제 쓰레기봉투 더미를 불도저가 넓게 펴고 있다. 갈매기 떼는 먹이를 찾아 주변을 배회한다. 포화를 앞둔 이곳에서 매일 반복되는 풍경이다.

폐기물 처리 시설은 도시가 작동하기 위한 필수 인프라이지만,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돼 있다. 시민들은 종량제 봉투를 집 밖에 내놓는 순간 쓰레기와 관계를 끊어낸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년에 생활폐기물 직매립이 금지되면 쓰레기 대란이 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남의 일처럼 들릴 뿐이다.

『쓰레기 기억상실증』은 이렇게 쓰레기를 버리며 수행하는 ‘망각의 의례’에 주목한다. 그리고 배경에는 정교하게 설계된 폐기의 인프라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불결하고 불편한 것들을 시야에서 격리하고, 이를 통해 쓰레기와의 관계는 의식의 표면에서 빠르게 단절된다. 이런 망각이 수십 년간 사회적 규모로 축적된 현상을 ‘쓰레기 기억상실증(Waste Amnesia)’으로 진단한다.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문학을 도구로 삼아 망각의 기원을 추적한다. 과거 서울의 공식 쓰레기 매립지이자 압축 성장의 부산물이었던 난지도는 그 상징적 무대. “불이 타고 있는 주변에서는 언제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는지 샛강 건너 상암동에서까지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었다.” 유재순의 소설 『난지도 사람들』의 한 구절이다. 당시 쓰레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메탄가스로 인해 난지도에는 큰불이 잦았다.

폐기물 제도 변화는 ‘쓰레기 기억상실증’을 더욱 공고히 했다. 1995년 도입된 쓰레기 종량제는 망각의 자동화를 이끈 결정적인 전환점. 여기에 수도권 매립지는 망각의 혜택(깨끗한 도시)을 누리는 주체와 망각의 부담(환경적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주체를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시켰다.

책은 망각의 인프라를 생명 영역까지 확장한다. 방역 수단이자, 생명을 폐기물로 전환하는 극단적 사례인 살처분 현장 역시 문학 작품을 통해 들여다본다. 지난 15년 동안 1억 마리에 달하는 가축이 살처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마저 쓰레기로 처리하는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은 설 자리가 없다.

이 책은 쓰레기를 줄이거나 재활용을 하자는 환경 실천서는 아니다. 대신 잊지 말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압축 성장의 그늘을, 살처분 매립지는 경제 논리 아래 스러져간 생명의 무게를 증언하는 기억의 지층”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문학은 망각의 인프라에 맞서 버려진 것들의 목소리를 되살리려는 시도다.

치유의 방법으로 폐기의 공간을 도심과 주거지 속에 공존시키자는 제안도 있다. 홍익대 건축공학대학원 교수가 쓴 『폐기의 공간사』는 쓰레기가 거치는 다양한 공간, 폐기물 처리 시설이 랜드마크로 탈바꿈한 국내외 사례를 소개하며 “쓰레기를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바깥으로 밀어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 들여올 때 우리는 ‘덜 해로운 방식’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쓰레기를 처리할 방법들을 고민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매립지의 풍경을 다시 떠올려 본다. 우리는 쓰레기를 버리며 무엇을 잊고 있는가. 그 망각의 대가를 누가 치르고 있는가.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