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논의에서 꾸준히 부상하는 주제가 ‘국고 지원’이다. 우리는 보험료를 더 내는데 국가도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가입자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정부 재정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이에 지난 3월 국민연금법에 국가의 지급 ‘보장’ 문구가 명시됐고 연금 크레디트도 일부 확대됐다. 앞으로 국고 지원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제는 기준을 명확하게 세워야 할 때다. 국민연금에서 국고 지원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국민연금에서 국고 목적은 사회적 지원과 적자 지원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적 지원은 출산 크레디트, 군 복무 크레디트, 실업 크레디트 등 연금 크레디트와 저임금 노동자, 저소득 지역가입자, 농어민 가입자를 위한 보험료 지원이다. 적자 지원은 현재까지 누적된, 그리고 이후 발생할 ‘보험료 수입·급여 지출’의 적자분을 국고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 논의에서 가입자 단체들이 요구하는 국고 지원의 핵심은 보험료 부족분에 대한 국가 책임이었다. 미래 국민연금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보험료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데, ‘왜 보험료로만 충당하려 하느냐, 국고도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유럽은 연금 재정의 4분의 1을 국가가 지원하는데, 한국 정부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는 비판도 더해진다.
일단, 유럽에서 국고 지원 4분의 1은 국민연금만이 아니라 특수직역연금, 기초연금까지 포함하는 공적연금에 투입되는 재정임을 확인하자. 많은 나라들이 기초연금을 시행하고 우리나라보다 강력한 연금 크레디트를 적용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이미 공적연금 지출의 3분의 1 이상을 정부가 마련하고 있다. 2024년에 공적연금 전체 지출이 100조원에 육박하고 정부가 담당하는 몫은 국민연금 지원, 특수직역연금 적자 보전, 기초연금 지출을 합해 약 35조원에 이른다. 요컨대, 공적연금 전체로 비교할 때 한국 정부의 국고 부담이 작다고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의 국고 지원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국민연금 급여가 여전히 낮고 연금 사각지대도 존재하기에 기초연금은 계속 중요하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적자도 과거 독특한 역사에서 비롯된 결과여서 정부가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국민연금에 대한 국고 지원이 적다는 점이다. 2024년 국민연금 급여 지출은 약 43조원인데, 국고 지원은 1조원에 불과하다. 앞으로 논의는, 지금도 정부의 공적연금 재정 지출이 적지 않기에, 국민연금에서 지원할 것과 하지 말 것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우선 사회적 지원은 공적연금 본연의 역할이기에 더욱 강화돼야 한다. 출산 크레디트는 첫째 자녀부터 최소 2년, 군 복무 크레디트는 복무기간 전체로 확대하고 나아가 돌봄 크레디트, 직업훈련 크레디트도 도입해야 한다. 또한 보험료 지원에서는 보험료를 전액 본인이 납부하는 도시지역 가입자가 핵심이다. 농어민처럼 국가가 사실상 사용자 역할을 해 보험료의 대략 절반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결국 국고 지원에서 논점은 ‘적자 지원’에 있다. 국민연금 재정에는 지금까지 쌓인 과거 누적 적자와 이후 생길 적자가 있다. 이 적자는 연금 선진국들이 꾸준한 연금개혁으로 수지 균형을 맞추어온 것과 대비되는 한국 국민연금의 특수한 과제다. 무엇보다 앞으로 발생하는 적자는 국민연금 제도 안에서 해소해가야 한다. 초고령화 인구구조에서 미래로 갈수록 노년 부양 부담이 무거워지는 상황에서 수지 적자를 놔둘 수는 없다. 이번 보험료율 인상으로도 부족한 몫은 향후 기금수익 제고, 수급개시 연령 상향, 추가 보험료율 인상 등을 통해 가입자들이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과거 누적 적자까지 현재 가입자의 보험료로 충당하는 건 무리다. 이는 적자를 발생시킨 기성세대 전체가 책임지는 게 적절하다. 연금소득에서 걷는 소득세 등을 국민연금 재정에 투입한다면 앞세대가 적자 개선에 기여하므로 세대 간 형평도 증진할 수 있다.
정리하자. 공적연금 지급을 위해 국가는 마지막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국민연금 국고 지원, 더 필요한 곳은 어디인가. 당연히 연금 크레디트, 보험료 지원 등 사회적 지원은 강화돼야 한다. 과거 누적 적자도 기성세대를 대표해 국가의 몫이다. 이렇게 투입된 국고는 기금 규모를 늘려 기금수익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 단, 향후 보험료 부족에 의한 적자까지 국고에 의지할 수는 없다. 국민연금은 적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수지 균형을 향한 연속개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