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마르크스 경제학’ 3개 과목 전부 공식 폐지···학생들 “의도적 배제·탄압”

2025-12-18

8개 학기 안 지났는데 폐지···이례적 결정

강성윤 교수 “교육 당사자 의견 낼 방법 없어”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교과목이 공식 폐지돼 경제학부 교육과정에서 사라졌다. 학생들은 “비판적 학문을 접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차단한 결정”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8일 서울대 학사정보 서비스 ‘스누지니’를 보면, 경제학부에 개설돼 있던 마르크스 경제학 관련 교과목인 ‘정치경제학입문’, ‘마르크스경제학’, ‘현대마르크스경제학’ 등 3개 과목이 모두 폐지됐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과 대척점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을 분석하고,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논의하는 학문이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는 세부 전공 분야 중 하나로 운영돼 왔다. 국내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김수행 교수가 2008년 정년 퇴임한 이후 후임 전임 교수가 채용되지 않았고, 비정규직 강사들이 강의를 맡아왔다.

서울대는 “수요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2024년 1학기를 끝으로 교과목들을 사실상 폐강했다. 다만 행정적으로 ‘폐지’ 처리하지 않은 채 교과목록에 남겨뒀다. 그러나 이번에 공식 폐지하면서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학교 측의 ‘수요 부족’ 설명과 달리, 학생들은 수요가 꾸준히 존재했다고 반발하고 있다. 매 학기 교과목 수요조사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은 비교적 높은 수요를 보였고, 학생들이 결성한 ‘서울대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서마학)’ 모임은 지난 6월 ‘0학점 공개강좌’ 형태로 강의를 자체 개설했다. 이 강의에는 재학생 300명을 포함해 총 3000여명이 수강신청을 했다. 서마학은 이후 교과목 재개설과 강사 채용을 요구해왔지만 학교는 결국 폐지를 결정했다.

이번 결정은 서울대 학칙에 비춰봐도 이례적이다. 학칙에 따르면 계절학기를 제외한 정규 학기 8개 학기 동안 개설되지 않은 교과목은 자동 폐지되는데, 마르크스 경제학 교과목들은 8개 학기가 지나기 전에 폐지됐다. 교무과 관계자는 “8개 학기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폐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다만 학과·학부 차원에서 폐지를 요청하면 그 전에도 폐지가 가능하다. 이번에는 사회과학대학 측에서 폐지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폐지 결정 과정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서울대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쳤던 강성윤 교수는 “제가 강사로 있을 당시에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강의를 열지 않기로 한 결정이 담당 직원의 사후 통보로 전달됐다”며 “의사결정 과정 전반에서 교육 당사자인 교수·강사나 학생이 의견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번 폐지를 학문 다양성의 문제로 봤다. 그는 “주류 경제학은 자본주의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체제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고,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런 관점을 공식·비공식적으로 주입받는다”며 “대학에서조차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이 차단된다면 학생들은 체제에 순응하는 노동자로 길러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극히 일부 대학에서만 이런 비판적 학문을 접할 기회가 남아 있었는데, 그것마저 허용하지 않겠다는 신호”라고 했다.

학생들은 이번 결정을 단순한 ‘행정 판단’으로 보지 않는다. 황운중 서마학 대표는 “학생 수요가 충분히 있음에도 폐지된 것은 단순히 경쟁에서 밀린 게 아니라 의도적 배제이자 노골적인 탄압”이라고 비판했다. 강 교수 역시 “주류에서 밀려난 소수 학문과 이론·사상을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해 배제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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