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은 “쿠팡이 독과점 납품업자에 대해 우월적 지위에 있지 않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취소했다. 법원은 양측의 시장점유율·거래의존도·대체거래선 존재 여부를 종합하며 “대규모유통업법은 규제수준을 대폭 강화하고 있어 현저한 협상력 차이가 없으면 행정개입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대규모유통업법(대유법)에서 관행처럼 인정되어 온 '유통업자의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디지털 유통 생태계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이다.
사실 대유법은 2012년 당시의 오프라인 대형마트·백화점의 시장 집중에 대응해 탄생했다. 당시 상위 3개사 점유율(CR3)은 대형마트 76%, 백화점 78%에 달해 '구매력 착취' 우려가 컸다. 반면 2020년대 온라인 소매 CR3는 50%대에 머물고, 소비자는 터치 한번으로 언제든 쇼핑몰을 변경한다.
규제의 실효성 역시 의문이다. 공정위가 2023년 납품업체 2000곳을 조사한 결과, 불공정행위 경험률은 불이익 제공 3.8%, 판촉비 전가 3.4% 등 대부분 4% 미만이었다. 입법 당시 상정했던 갑질은 이미 그간의 법집행과 판매 채널 다변화의 흐름 속에 급격히 줄었다.
해외 입법례는 한국보다 훨씬 좁은 칼날로 규제한다. 영국(GSCOP)은 매출 1.8조원 이상 소매업체의 '식료품' 거래만 규제의 대상으로 하며, EU(Directive 2019/633) 역시 매출 1.5조원 이상 소매업체만 모든 납품업체와의 식료품 거래를 규제한다. 반면 대유법은 매출 1000억원만 넘으면 모든 품목·모든 거래유형에 광범위한 책임전환(입증책임, 과징금)을 부과한다.
이런 '갈라파고스'식 과잉규제는 집단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소비자의 후생을 갉아먹고 있다. 이미 대유법의 대표적인 규제인 '판촉비 5:5 분담'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납품업자들의 요청에 따라 대폭 완화된 바 있다. 그만큼 소비자는 규제로 인해 할인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온라인 중개플랫폼에 대유법을 그대로 덧씌우려는 최근 개정 시도는 위험하다. 플랫폼은 대량구매자가 아니라 중개자다. 대유법의 전제가 된 '바잉파워'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게다가 플랫폼 경제의 핵심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양면성인데, 직매입 거래의 단면적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양측면 모두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또 직매입 납품업체가 아닌 수백만 '셀러'를 모두 보호 대상으로 삼으면 규제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오히려 사각지대가 넓어질 우려도 있다.
이제 법은 현실을 따라가야 한다. 첫째, 매출액 1000억원 기준 및 모든 상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타당한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둘째, '유통업자라면 우월적 지위에 있다'는 과잉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우월성 판단 기준을 '비대칭적 의존' 등으로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 예측가능성 측면에서는 하도급법과 마찬가지로 일률적인 규모 기준을 두는 방안도 있다. 셋째, 판촉비 분담 규제의 완화와 마찬가지로 대유법상 여타 규정도 소비자 후생을 함께 고려해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치열한 경쟁 하에서 규제 완화로 확보된 마진은 소비자 할인과 물류 혁신에 재투자될 수 있다. 넷째, 변화된 유통 환경 하에서 자율 협약 등을 우선하는 등으로 접근 방식을 전환하는 것도 효율적이다.
법을 손보지 않고서는 혁신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법원이 던진 질문에 입법자가 응답해야 할 시점이다. 유통생태계의 건강한 경쟁과 소비자 후생을 지키기 위해 '포괄적 규제'에서 '정밀 규제'로 전환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박성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sunggene.park@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