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미술관, 이적요 43번째 개인전 ‘몰입의 속도’

2025-11-13

 “작년 12월 3일 말도 안 되는 계엄사태를 겪으며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작품 ‘은유화법’은 이때 시작된 작업으로, 한땀 한땀 꾹꾹 누른 바느질 드로잉으로 계엄사태가 진행 중인 겨울 내내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던 올해 3월 7일 법원이 윤석열의 구속을 취소하며 석방되자 다시금 바느질을 들었고, 그때의 혼란을 담은 결과물이 ‘나른한 은총’입니다.”

 전시장 정면에 내걸린 가로 1m38cm, 세로 1m86cm 크기의 ‘은유화법’과 ‘나른한 은총’ 2점의 대작은 각각 49조각의 바느질 드로잉 작업으로 완성됐다. 붓이 아닌 바느질로 그려나간 것은 그만큼 절실했기 때문이다.

 의자와 찻잔, 나비, 나무 등의 조형물이 보이고, 사람의 형상이나 결혼식 사진, 각종 꽃들도 한 조각씩을 차지하고 있다. 다양한 문구도 새겨져 있고, 독(毒)과 같은 단어도 보이지만 그게 딱히 위중했던 계엄사태와 무슨 연관이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이적요 작가의 43번째 개인전 ‘몰입의 속도’가 전주 교동미술관 2관에서 24일까지 열린다. 몰입의 속도는 이번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한 문구다. 겨우 30~40분 작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면 2~3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걸 알게 되는 일이 반복됐다고 한다. 그만큼 몰입의 정도가 깊었다는 반증이다.

 작품에 계엄의 위중함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직설화법을 피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불안, 긴장, 절망, 분노들을 행동이 아닌 내면에서 삭히고 삭혀 내놓았다. 사건이 작가 내면으로 들어오고, 그 과정에서 내면으로부터 끌어올려진 기억들이 조각조각 만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만난 일상의 기억, 사회적 흐름, 파편화된 이념들이 버무러져 각각의 조각을 형성했다.

 소나무 고재를 활용한 작품도 이번에 처음 선보인다. 조각에 도전한 것은 몰입도가 높아서다. 그건 붓을 활용한 회화작업에서 바느질 드로잉으로 나아갔던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완성된 소나무 고재 작품도 17점이 전시장을 채우고 있다.

 이적요 작가는 “선보이는 작품들은 조형적 질서, 색감의 조화 등을 모두 감각의 흐름에 맡겨 즉흥적으로 표현한 결과물”이라면서 “작가는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작품을 제작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건 각자의 영역인만큼 그냥 편하게 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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