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하 전시장 맨 끝 검은 방. 여기 김창열(1929~2021)의 물방울(사진) 딱 두 점만 걸렸다. 눈물 같은 이 그림 앞에 사람들은 오래 머물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김창열 회고전이다. 생전의 김환기도 물방울에서 그런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창열이 poster 벽에 붙여놓고 늘 보고 있어요. 물방울이 아니라 창열이 땀방울로 보여요. 참 일을 많이 했구먼.”
1973년 7월 뉴욕의 김환기(1913~ 74)가 파리의 김창열에게 보낸 편지다. 16살 아래 화가 김창열의 전시를 축하하는 내용이다. 스스로를 유배한 채 점 찍고 둘러싸고 점 찍기를 반복하던 김환기였다. 그는 김창열의 물방울에서 자신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김환기 추천으로 김창열은 1966년 록펠러재단 기금을 받아 뉴욕에 정착했다. 그러나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캔버스에 옮긴 김창열의 검은 앵포르멜은 뉴욕에서 한물간 그림 취급을 받았다. 팝아트가 유행하던 뉴욕에서 김창열은 상처를 헤집듯 구멍을 내고, 거기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는 것 같은 추상화를 그렸다. 주눅 든 채 4년을 버티다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물방울이 시작됐다.
생전에 그는 뉴욕 시기 그림을 공개하기 꺼렸다. 물방울에 대한 설명도 아꼈다. 화가의 침묵 속에 세상은 “잘 팔리니까 물방울만 그린다”고들 했다. 실제로 고급 호텔 로비든 아트페어든, 그의 물방울 그림은 흔했다. 물방울 이전, 뉴욕 시기 그림들이 회고전에 걸렸다. 물방울이 하루아침에 나온 게 아님을 보여준다. ‘물방울 서사’가 완성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