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에 17일부터 사흘간 527.2㎜ 폭우
북구에서 실종자 2명, 신안동 침수피해
“눈 깜짝할새 매장 의자 둥둥 떠올라”
전남도 최대 600㎜ 폭우…가축,농작물 피해 막심

“살림도, 희망도 다 떠내려갔습니다.”
20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신안교 앞. 햇살이 쨍하게 내리쬐는 도심 골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바닥은 진흙투성이였고, 붉은 펌프 호스는 곳곳에 뻗어 흙탕물을 퍼내는 중이었다. 젖은 가구와 살림살이는 인도와 차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주민과 상인들은 젖은 슬리퍼를 끌며 쓰레기 더미 속에서 쓸 만한 물건을 뒤적였다.
인근 단독주택에 사는 이항구씨(86)는 “방 안까지 물이 들어찼다. 바닥에 있던 물건은 모두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말끝을 흐렸다. 집 안에서는 아내가 걸레로 흙탕물을 쓸고 짜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도 물이 들긴 했지만, 이번처럼 집 전체가 잠긴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기상청과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사흘간 광주에 광주 527.2㎜의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17일 당일 하루 동안만 426㎜가 쏟아지며 사상 최대 일 강수량을 경신했다. 북구는 가장 비가 많이오고, 침수 피해도 심한 곳이다. 북구에서는 이곳 신안교와 금곡동에서 각각 1명이 급류에 휩쓸리거나 연락이 끊겨 실종 상태다.
삽시간에 들어찬 물에 주변 상가는 초토화됐다.
한 숙박업소는 1층과 지하 전체가 물에 잠겼다. 입구에 굵은 호스를 연결해놓고 계속 지하층 물을 빼냈지만 좀처럼 수위는 낮아지지 않았다. 건물 관계자 A씨는 “아직도 지하에 물이 가득하다. 언제쯤 다 빠질지 짐작조차 어렵다”고 토로했다.
인근 식당과 카센터 앞도 침수된 집기와 장비들이 즐비했다. 몇몇 상인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광주신안DT점 스타벅스는 1층 전체가 물에 잠기며 영업을 중단했다. 테이블과 소파, 가전제품은 매장 밖으로 나왔고 출입문 앞에 통제선이 둘러졌다. 한 주민은 “눈 깜짝할 새 물이 들이닥치더니 매장 안 의자들이 둥둥 떠올랐다”고 전했다.
신안교 일대는 광주에서 대표적인 상습 침수 지역이다. 2020년에도 집중호우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비롯해 상가, 주택가까지 물에 잠기며 차량 수십 대가 침수됐다. 당시 방재시설 부족이 지적됐지만 이후 개선은 미미했고, 이번에도 일부 차단막이 설치됐지만 “속수무책이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광주시가 집계한 침수·파손 등 피해 접수는 1311건에 달한다. 도로 침수 447건, 도로 파손 260건, 차량 침수 124건, 건물 침수 263건으로 서구(101건), 동구(71건), 북구(41건) 순으로 많았다. 광주의 대표적 6·25 격전지 북구 동림동 옛 산동교는 교각이 파손돼 상판이 휘었고, 일부 도로는 붕괴하기도 했다.
전남에도 역대급 폭우가 내리면서 피해가 속출했다. 사흘간 광양 백운산 602.5㎜, 담양 봉산면 540.5㎜, 순천 황전면 456.5㎜ 등 극한호우가 쏟아졌다.
순천시 오천동 인근 하천에서는 1명이 급류에 휩쓸렸다는 신고가 접수돼 수색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기준 전남 내 공공시설 피해는 297건이다. 이 가운데 제방 유실이 211건으로 가장 많았고, 양수장·배수장·저수지 등 수리시설 피해가 62건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담양(62건), 나주(31건), 영광(26건) 순으로 피해가 집중됐다.

문화유산도 여러곳 피해를 봤다. 담양 소쇄원 진출입로 돌담, 보성 안규홍·박제헌 가옥 뒷사면, 장성 고산서원, 순천 선암사 진입로 등에서 담장 유실과 토사 붕괴가 발생했다.
가축 피해도 심해 닭·오리 등 가축 23만 마리와 돼지 500마리, 꿀벌 15군이 폐사해 5억7000만원 이상의 피해가 추산됐다. 양식장에서는 뱀장어·우렁이 등 수산 생물이 유실돼 1억2000만원 피해가 발생했고, 벼 6301㏊, 시설작물 263㏊ 등 농작물 피해도 7313㏊에 달했다.
광주시와 전남도는 이날부터 본격적인 복구에 나섰다. 가장 피해가 컸던 광주 북구 신안동·동림동·중흥동 일대에는 공무원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이 투입돼 침수 가전과 폐기물 정리에 나섰고, 인근 군부대도 병력을 파견해 복구를 지원하고 있다. 전남 각 시·군도 현장 대응 인력을 긴급 투입해 제방 보강과 복구 작업을 벌이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광주 신안교를 찾아 피해 주민을 위로하고 “신속한 수습과 복구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