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림축산식품부가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을 추진하겠다고 국정기획위원회에 보고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두 번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된 법안이다. 쌀값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이를 의무매입해 쌀값 안정을 도모한다는 취지지만, 재정 부담이 크다는 점은 숙제다. 정부의 쌀값 안정 정책에 부합하는 경우만 조건부로 의무매입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농식품부는 지난 19일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에서 향후 양곡법 개정안 추진 내용을 담아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개정안에 재정 부담 등을 이유로 반대해 온 기존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양곡법 재추진은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이다. 이날 업무보고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22일 “개정안과 관련해 구체화된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라”면서도 “최근 국회에서 쌀 과잉생산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포함된 법안이 발의되기도 하고, 타 작물 재배 지원금을 늘리는 등의 정책과 병행 시 재정 부담도 낮아질 수 있어 기존 우려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곡법 개정안의 핵심은 쌀 과잉공급으로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가 과잉 공급분을 사들이는 것이다. 현행법은 ‘필요 시 매입’으로 규정해 정부 재량을 열어뒀다. 개정안은 이를 의무매입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쌀값 안정과 농가의 소득을 보장한다는 취지다. 식량 안보 차원도 있다. 일본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올해 쌀값이 1년 전보다 2배 가량 뛰면서 혼란을 빚었다.
과거 정부에선 “쌀 과잉생산을 고착화해 쌀값 하락을 유발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기류가 달라졌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 대통령 당선 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양곡관리법을 바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에는 이미 12개의 양곡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박희승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5일 발의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는 미곡 가격이 폭락·폭등 하는 경우 미곡의 초과생산량을 매입하거나 정부관리 양곡을 판매하도록 하는 양곡가격안정제도 내용이 담겼다. 정부가 양곡수급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의무매입 기준·가격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
관건은 ‘의무매입’ 조항으로 생기는 재정 부담을 어떻게 완화할지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에 따르면 양곡법 개정안 시행시 2030년 연간 1조4000억원 재정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된다.
벼 재배면적 감축을 추진해온 정부 당국의 기조와 충돌할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쌀값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될 경우 농민 입장에서는 벼 재배를 줄일 이유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농경연은 양곡법 개정안 시행 시 2030년에 63만톤의 쌀이 초과공급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조건부 의무매입’이 대안으로 떠오른다. ‘벼 재배면적 감축 노력’을 이행한 농가만 의무매입을 하는 등의 조건을 다는 것이다. 문대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양곡법 개정안을 보면 정부의 감축 목표를 달성했음에도 쌀값이 하락할 때에 정부가 매입하도록 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전 정부에서는 의무매입 자체를 무조건 나쁘다고 프레임 씌웠으나 이미 미국 등 주요국에서도 시행되는 정책”이라며 “효과적인 시행을 위해 세부사항을 위원회에만 맡기는 게 아니라 국회가 입법으로 정리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