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이달 초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10억원대 아파트를 구입했다. 퇴직금을 중간 정산하고, 부족한 자금은 빚내서 채울 계획이다. 박 모씨는 “집 살 기회를 더 놓쳐선 안 된다는 생각에 결정했다”며 “집 계약 후엔 규제가 강화될까 봐 주택담보대출부터 알아봤다”고 말했다.
요즘 서울 아파트값과 코스피 시장이 동시에 들썩이면서 ‘빚투(빚내서 투자)’가 지난해 여름 못지 않게 뜨거워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19일 기준 752조749억원으로 지난달 말보다 3조9937억원 불어났다.
빚 증가 속도도 가팔라졌다. 하루 평균 증가액은 약 2102억원으로 지난달(약 1612억원)보다 500억원 가까이 늘었다. 빚투가 폭발했던 지난해 8월(일일 평균 3105억원) 이후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이달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 폭은(전월 대비 잔액 기준) 올해 처음으로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은행 업계는 예상한다.

주담대와 신용대출 수요가 몰리면서 가계 빚을 키웠다. 5대 은행의 주담대 잔액은 이달 19일 596조6471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의 79%를 차지했다. 이달에만 20여 일 동안 2조9855억원 급증했다. 서울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대출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빚내서 집 사려는’ 대출자가 최근 몰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셋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주간 기준)은 일주일 새 0.36% 뛰었다. 주간 상승 폭으로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9월 둘째 주(0.45%) 이후 가장 높았다. 예비 대출자 입장에선 다음 달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시행으로 대출 한도가 더 줄기 전에 막차에 오르는 것이다
신용대출도 눈에 띄게 늘었다. 이달 5대 은행의 신용대출 잔액은 104조4027억원으로 19일 동안 1조882억원 불어났다. 이미 5월 한 달간 증가액(1조882억원)을 넘어섰다. 신용대출은 주택 거래뿐 아니라 주식 투자 수요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시장에선 해석한다. 새 정부 들어 코스피는 상법 개정안 등 증시 부앙책 기대로 지난 21일 3000선을 뚫었다. 이달 들어서만 12% 뛰었다.
대출 수요가 쏠린 일부 시중은행은 다시 대출 문을 좁히기 시작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을 소집해 월별ㆍ분기별로 가계대출 공급액이 목표치를 벗어나지 않도록 관리하라고 압박하면서다. 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다른 은행에서 농협으로 갈아타는 주담대 대환대출(비대면 포함)을 한시적으로 막는다. 이달 18일 우대금리 요건을 강화한 이후 추가로 내놓은 조치다. SC제일은행은 지난 18일부터 주담대 상환 기간을 최장 50년에서 30년으로 단축했다. 대출 만기가 줄면 대출자의 원리금 부담은 커진다.
금융당국도 딜레마에 빠졌다. 한국 경제가 0%대 저성장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각종 부양책을 쏟아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유동성 정책이 가계부채와 서울 집값을 더 자극할 수 있어서다.
은행업계에선 23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주요 시중 은행장과 만나는 은행연합회 정례이사회에서 가계 대출과 집값 상승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이 총재는 이달 12일에도 ”경기부양 정책이 시급하지만, 기준금리를 과도하게 낮추면 실물 경기 회복보다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다음 달 기준금리 동결을 택할 확률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