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마녀사냥보다 합리적 논의를

2025-09-01

유럽사의 마녀사냥은 집단적 오해와 정보의 왜곡이 어떻게 사회를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이를 두고 “정보가 문제를 만들고, 더 많은 정보가 문제를 악화시킨 대표적 사례”라고 평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퇴직연금 제도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오해가 상당히 많다. 일각에서는 ‘수익률 2%대’, ‘방치된 연금’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며 국민연금과 단순 비교한다. 그러나 퇴직연금은 구조적으로 국민연금과 다르다. 가입자가 직접 운용 지시를 내려야 하며, 근속 기간이 짧은 경우가 많아 장기 투자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비교는 제도의 본질을 왜곡하고, 불필요한 불신을 키운다.

퇴직연금은 2005년, 기업의 부도나 파산으로 인해 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근로자의 노후 자산을 안정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후 정부와 금융회사는 제도 확산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금융회사는 사전에 구성된 투자 상품 묶음인 ‘모델 포트폴리오’를 제공하고 상담을 강화했으며, 정부는 가입자가 별도 지시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투자되는 ‘디폴트 옵션’과 퇴직연금을 다른 금융기관으로 옮길 수 있는 ‘실물 이전 제도’를 도입했다.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제도는 점진적으로 개선됐다.

문제는 앞으로의 방향이다. 낮은 수익률에 대한 비판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근거 없는 비난만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짧은 근속 기간으로 인해 장기 투자가 어렵거나, 금융 지식 부족으로 예금 등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한 뒤,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합리적인 접근이다.

퇴직연금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가입자 교육과 상담을 강화해야 한다. 금융회사가 제공하는 모델 포트폴리오나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 비중을 자동 조절하는 타깃데이트펀드(TDF)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정부는 제도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예컨대, 개별 기업이 아닌 집합 기금을 전문가가 운용하는 ‘기금형 제도’를 도입하면 전문적 지원이 가능해진다. 셋째, 기업 역시 단순한 제도 도입을 넘어 직원의 은퇴 준비를 돕는 복지 정책으로 인식할 때 퇴직연금은 본래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역사는 복잡한 문제에는 희생양이 아니라 복잡한 해답이 필요하다는 점을 일깨운다. 퇴직연금에도 성토보다 분석이, 비난보다 개선이 필요하다.

민주영 신영증권 연금사업부 이사 경영학(연금금융)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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