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사면초가(四面楚歌)와 항우(項羽)

2025-05-26

제갈량(諸葛亮)의 저서로 알려지고 있는 ‘장원(將苑)’의 ‘장재(將材)’편에선 장수를 9가지 유형으로 나눴다. 인장(仁將), 의장(義將), 예장(禮將), 지장(智將), 신장(信將), 보장(步將), 기장(騎將), 맹장(猛將), 대장(大將), 이 가운데 항우(項羽. 기원전 232~기원전 202)는 과연 어디에 속할까?

이번 사자성어는 사면초가(四面楚歌. 넉 사, 얼굴 면, 초나라 초, 노래 가)다. 앞 두 글자 ‘사면’은 ‘동서남북, 즉 모든 방향’이다. ‘초가’는 ‘초나라 노래’다.

진시황의 통일 이전을 기준으로, 항우는 초나라 지역 출신이다. 항우가 직접 통솔하던 정예병 가운데 당연히 초나라 출신들이 많았다. 유방(劉邦), 한신(韓信) 등이 이끄는 병력에 포위당했을 때, 고립된 그 작은 성의 사방에서 심야에 초나라 곡조의 노래가 들려왔다. ‘해하(垓下) 전투’에서 대패한 후 도망쳐온 약 2만 병사들은 고향의 가족을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심리전이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사면초가’는 바로 이 상황에서 유래했다. ‘몹시 어려운 일을 당해 빠져나갈 방법이 거의 없는 상황’을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항우는 초나라 고위 관료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적(籍)이고, 우(羽)는 자다. 명장(名將)이던 그의 할아버지는 진(秦)나라의 침략에 맞서다가 패배해 자결했다. 위태위태하던 초나라도 결국 멸망했다. 항우의 나이 9살 즈음의 일이다.

이후, 그는 집안의 기둥 역할을 떠맡게 된 숙부 항량(項梁)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일찍 사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친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성인이 됐을 때, 항우의 키는 약 185cm 이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근육질 체형이라 힘이 장사였다.

22세부터 30세까지, 항우의 행적은 그 자체가 중국 역사다. 특히 전반부 4년의 활약상은 매우 통쾌하다.

22세에 진시황의 ‘5차 순행’ 행렬을 멀리서 선망하는 마음으로 구경했다. 그해 여름 진시황이 사망한다. 23세에 ‘진승·오광의 난’이 발생하고, 항량을 따라 그도 진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병했다.

항량이 초기에 전사했지만, 별동대를 이끌던 24세의 젊은 장수 항우는 연전연승(連戰連勝)하며 초나라 부흥 세력의 실력자로 부상한다. 초고속 성장이었다. 25세에 ‘거록(巨鹿)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고 진나라를 공격하던 모든 세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26세에 제후 연합군 약 40만 병력을 이끌고 마침내 진나라 수도에 입성했다. 진나라 마지막 황제를 살해한 후, 스스로를 ‘서초(西楚) 패왕’으로 칭하고는 중국을 19개 지역으로 나누어 자신의 뜻대로 분봉(分封)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그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준비가 덜 된 상태로 1인자가 되고 보니, 바로 위기가 닥쳤다. 공교롭게도 그의 강력한 라이벌 유방은 꽤나 능수능란한 중년이었다.

시야를 조금 넓혀보면, ‘사면초가’는 이 무렵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장량(張良), 진평(陳平) 등 유방 진영의 참모들은 항우가 자신과 친척 이외에는 불신한다는 약점을 집요하게 공략했다. 이 시기 항우는 유능한 참모였던 범증(范增)을 의심하다가 결국 헤어진다. 유방 참모들의 반간계(反間計)에 제대로 당한 것이다.

이후 항우는 홀로 모든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곤궁한 처지가 됐다. 그러다가 결국 경쟁자 유방 진영에 겹겹이 포위되어 ‘사면초가’를 듣는 신세가 됐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항우는 위풍당당한 강골(强骨) 리더였다. 어렵게 손에 넣었던 당시 중국 전체를 유방에게 넘기고, 칼로 목을 찔러 자결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겨우 30세였다.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시인 두목(杜牧), 문장가 소동파(蘇東坡) 등 훗날 많은 이들이 이 젊은 영웅의 최후를 아쉬워했다. 누군가 곁에서 유연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이 열혈남아를 보좌했다면, 그렇게 허망하게 중도에서 꺾이는 비운(悲運)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신을 똑똑히 차려도, 한 개인의 지혜와 역량에는 한계가 있다고들 말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 없다. 항우의 명마(名馬) 오추마(烏騅馬)에 날개가 없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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