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기업 수사…CEO는 출국 묶이고 투자결정까지 차질

2025-11-02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수사 조직 개편이 예고되면서 기업을 둘러싼 주요 사건들이 수사 지연 유탄을 맞아 1년 넘게 장기화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새 정부의 정책 기조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약 없는 수사에 발이 묶였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부터 수사가 시작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방시혁 하이브 의장, 해저케이블 기술 유출 등 주요 기업 수사들이 줄줄이 지체되고 있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수사 일정이 명확해야 투자나 조직 재편 같은 중·장기 판단을 내릴 수 있는데 현 상황에서는 선제적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며 “내부적으로는 법률 검토 대응 비중이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경찰은 12·3 비상계엄 이후 지휘부 공백 사태와 간부급 인사 발령 지연으로 수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조지호 경찰청장이 계엄 가담 의혹으로 탄핵 심판에 넘겨지면서 10개월째 대행 체제가 이어지고 있고 치안정감·치안감·경무관·총경급 인사가 연쇄적으로 미뤄진 상태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수사관은 “책임자 부재로 기존 수사 기조를 그대로 가져갈지, 새 방향을 설정할지 자체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검찰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조직 개편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여러 특검 수사에 검사·수사관 파견이 이어지면서 경제·반부패 수사 라인의 가동 여력이 줄고 있다. 이 전 회장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혐의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이 올 5월 이 전 회장을 조사했지만 이후 지휘 라인 공백과 사건 적체로 속도는 뚜렷하게 둔화됐다. 검찰 내부에서는 “대형 사건 기소 판단은 조직과 라인의 향후 운용과 직결될 수 있어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수사가 장기화된 또 다른 대표 사례가 하이브다. 방 의장은 2019년 기존 투자자들에게 상장 계획이 없다고 밝힌 뒤 하이브 임원 출자 사모펀드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기존 주주 지분을 매입하고 2020년 상장 후 지분을 대량 매각해 약 1900억 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한국거래소와 하이브 용산 본사를 압수수색하고 방 의장을 두 차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뒤 출국 금지 조치까지 진행했지만 이후 수사는 사실상 멈춰 있다.

하이브 내부에서는 내년 7월 BTS 완전체 활동 재개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수사 장기화에 대한 우려가 상당하다. BTS 멤버 전원이 제대한 뒤 미국·일본·남미 등에서 다국적 프로듀서, 레코딩 스튜디오와 직접 협업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방 의장과 주요 경영진의 국내 체류가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프로젝트 시기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한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는 “BTS는 컴백 타이밍, 투어 동선, 음악적 방향성까지 ‘글로벌 사전 교섭’이 매우 크고 긴밀하게 작동하는 팀”이라며 “경영진의 직접 조율 없이 원격으로는 한계가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수사 지연이 곧 시장 진입 타이밍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해저케이블 산업기술 유출 갈등을 겪고 있는 LS전선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LS전선은 해저케이블 공장 설계 경험을 가진 가운종합건축사사무소가 대한전선의 신공장 설계 과정에서 핵심 설계 노하우를 유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대한전선은 “일반 설계 기법의 활용”이라고 반박하는 상태다. 문제는 이 갈등이 정부의 차세대 전력망 확충 정책이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345kV급 송전망 확충과 재생에너지 연계망 투자를 준비하고 있지만 전력망 공급 기업인 LS전선과 대한전선 모두 수사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나 해외 수주 전략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기 어렵다는 내부 판단을 공유하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해 7월 이후 세 차례 압수수색 및 관계자 조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복잡한 기술적 분석 과정 때문에 결론은 계속 늦춰지는 상황이다.

문제는 수사가 언제 정상 속도를 되찾을지 내부에서도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검찰은 조직 개편과 특검 파견으로 인한 인력 분산이 해소돼야 하고, 경찰은 지휘 체계 재정비가 선행돼야 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 수사가 장기화되면 피해는 결국 기업과 시장, 산업 경쟁력으로 전가된다”며 “지금은 지연이 ‘일시적’이 아니라 구조화되고 있다는 점이 더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